막내 남동생이 결혼 날짜를 잡았단다.
우리 막내가 장가를 가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늘 마냥 막내같기만 한 남동생. 이제 그가 예쁘고 착한 색시를 얻어 가정을 만든단다.
아들이랑 목욕탕 한번 가보는게 소원이라시던 아빠의 원대로 딸넷, 그리고 다음이 바로 막내 남동생이다. 귀하게 얻은 아들이라 어려서는 막무가내 땡깡 왕자님으로 집과 학교에서 그 유세를 떨쳤고, 그 남동생때문에 우리집 딸들은 집안에서부터 여권신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랐다. 학교에 숙제를 안해가고도 선생님께 , “나 혼내면 우리 아빠한테 혼나는데…”그랬다는 동생. 그 유세가 너무 얄미워 아빠, 엄마 안 보실때는 꼬집어주기도 많이 했었는데…
자라면서 많은 누나들 덕에 남동생은 누나들을 언니라고 부르고, 형을 오빠라고 부르며 자랐다. 그 모습을 놀러왔던 친구가 놀리는 바람에 고치긴 했지만, 그게 중학교 3학년때 일이다.
사춘기때는 누나들 잔소리 듣기 싫다며 벽을 주먹으로 치는 바람에 한번도 본적없는 사춘기 남학생의 행패가 너무 무서워 누나들이 혼비백산 도망갔던 적도 있었다.
대학때 이제 막 담배를 배우기 시작하고선, 누나와 길에서 딱 마주치자 피다만 불 뻘건 담배를 주머니에 집어넣어 주머니에 구멍을 내기도 했고, 첫 연애에 실패하고선 몇날 몇일을 술을 사들고 들어와 하소연 하는 바람에 남동생 두번만 실연했다간 누나들 알콜중독 되겠다며 말리기도 했었다. 결혼전 내가 직장생활 할때, 월급날이면 잊지않고 전화해선 “누나 통닭 한마리!”를 외쳤던, 하지만, “ 좀 일찍 좀 못다녀!” 누나들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불같이 화를 내서 엄마 보다도 더 눈치 보게 만들었던 녀석… 장가간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한 막내 동생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 많은 추억거리가 머리속을 스친다. 그리고 추억할 참 많은 것들이 있었음에 세삼 감사하다.
아들을 그렇게 바라시던 아빠는 막내가 4학년이 되던해 봄, 세상을 떠나셨다.
아직 죽음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아빠의 영정 사진을 장례식장으로 들고 들어오던 막내의 모습때문에 함께 계셨던 분들이 더 가슴아파 했었고, 나 또한 그 날의 그 모습이 가슴 한켠에 낡은 사진처럼 남아 있다. 하지만, 늘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자라 이제 어엿한 한 가정에 가장이 될 준비를 한다니 고맙고 기특하다.
난 아직 올케 될 사람의 얼굴도 못봤지만, 왠지 내 동생을 닮은 예쁜 사람일 것 같다. 홀시어머니에 시누 넷이라는, 정말 말만 들어도 도망가고픈 이 집에 남자 하나 믿고 선뜩 시집을 오겠다는 그 용기가 참 고맙다. 살다보면 늘 모든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테지만, 그냥 지금처럼, 들뜬 마음으로 새 살림을 준비하듯, 예쁜 마음으로 잘 살아주기를…
딸들 시집 보낼때, 참 많이도 우셨던 우리 엄마. 하지만 마지막이라 더 눈물이 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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