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나 회사가 파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국가도 그럴 수 있을까. 세계 금융 위기로 미국과 유럽의 은행과 금융 기관이 쓰러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슬랜드는 나라로는 처음 부도가 날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 10년간 분수에 넘치게 흥청망청 돈을 써 온 이 나라 은행과 국민들은 이제 이를 갚아야 할 날을 맞고 있다. 아직 경제 추락 효과가 충분히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부비 모르텐스 같은 이들은 이를 이미 느끼고 있다.
10년간 장기호황 끝나며 은행 줄도산
전통적 가치로 복귀 등 긍정적 측면도
지난 수요일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사람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공연을 가진 그는 “사회에 공포가 만연돼 있으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원래 어부 출신인 모르텐스는 ‘아이슬랜드의 엘비스’로 알려진 록 가수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슬랜드가 잘 나갈 때 그도 상당한 돈을 모았다.
그러나 지난 달 금융 위기가 심화되면서 정부는 아이슬랜드에서 세 번째로 큰 은행을 접수했다. 이 은행 주식에 평생 모은 돈을 투자했던 그는 이를 모두 날리게 됐다. 그는 “지금은 누구 탓을 할 때가 아니다”라며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아이슬랜드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위기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신뢰 회복에 실패하고 있다. 자국 화폐 가치를 다른 나라 돈과 연동시키려던 노력은 포기한 상태다. 화산과 가이저가 많고 찬 북대서양 바람이 부는 이 나라 사람들은 지진과 해일의 위험 속에 산 탓인지 아직까지는 금융 위기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게이르 하르데 총리가 이번 주 말한 것처럼 ‘국가 부도’사태에 직면한 이 나라 사람들은 역사적인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제는 누구도 그것이 뭘 뜻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국가가 부도난 경우는 있지만 그건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였다.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유럽과 가깝다고 생각한 나라가 그런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분명한 것은 경제가 중력의 법칙 적용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시대는 끝났다는 점이다. 아이슬랜드 투자가들이 미국과 영국 기업들을 인수하러 다니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일반 국민들이 제2 모기지를 얻어 해외여행을 하거나 레이캬비크의 샤핑몰 라우가베구르에서 돈을 펑펑 쓰던 시대도 그렇다.
레이캬비크에서 시계 장사를 하고 있는 프랑크 미켈슨은 “매우 상황이 어렵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10만 아이슬랜드 크로나(900달러) 하는 시계를 사기는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 이상 가격대에서는 금융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롤렉스처럼 제일 이름이 있고 쉽게 팔 수 있는 것에만 사람들이 관심이 있다. “세계 어디로 가지고 가든 쉽게 팔 수 있는 것을 사람들은 원한다”고 그는 말했다.
인구 12만의 이 나라 수도인 레이캬비크에는 아직 90년대 금융 산업이 자율화되면서 10년간 지속돼 온 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멋진 카페와 랍스터 레스토랑, 운동 기구점 같은 것들 말이다.
지난 9월 정부가 글리트니르 은행을 국유화 하면서 생선 말고는 다른 대부분 식품을 수입해야 하는 섬나라인 아이슬랜드 사람들은 식품을 사러 가게로 달려갔었다. 그러나 아직 물건이 동나지는 않았고 사재기 현상도 주춤하고 있다.
정부는 원래 글리트니르 은행 주식의 75%를 인수하려 했었다. 그러나 은행 재정 상태가 애초 생각보다 나빠 이를 금융 감독국에 넘기기로 했다.
두 번째로 큰 은행인 란트스방키는 화요일 국유화 됐다.
정부 보조를 받는 루터파 교회의 수장인 칼 시구르뵤른슨 목사는 이번 사태가 전통적인 가치로 회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목요일 정부는 최대 은행인 카웁팅 은행을 접수함으로써 은행업의 국유화를 완료했다.
그러나 피해를 본 사람은 은행 종사자만이 아니다. 최근 모기지를 얻은 아이슬랜드 사람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집값은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전문가들은 추가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이 중 상당수는 외국 돈으로 얻은 것이다. 은행 사람들은 작년 금리가 두 자리 수로 치솟자 이자가 싸다며 외국 론을 권유했다. 그러나 이제 아이슬랜드 크로나가 폭락하고 있다. 주택 소유주들은 비싼 달러나 유로화로 이자를 물어야 한다. 이와 함께 깡통 에퀴티 주택이 늘고 있다.
칼 시구르뵤른슨 목사는 현 상황이 영원한 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믿었던 아이슬랜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과거 축재보다 단합에 더 큰 가치를 뒀던 사회로서는 그 후유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숙제라고 말했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분석가들은 상황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어 전망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일부는 은행이나 금융 분야에 문제가 있어도 경제는 이를 버텨낼 만큼 튼튼하다고 말한다. 알루미늄 생산과 대체 에너지 분야에 있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 에너지 공장 제품 디자인 회사인 만빗 엔지니어링사의 총수인 에이욜푸르 라픈슨은 금융 위기에도 비즈니스는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독일과 영국에 이어 다음 주 부다페스트에 사무실을 열 계획이다. 그는 아이슬랜드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바람에 인도를 제외하고는 세계 어느 회사와도 경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칼 시구르뵤른슨 목사는 이번 금융 위기가 바이킹 신화에 익숙한 아이슬랜드 인들이 전통적 가치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르데 총리는 “작은 나라가 섣불리 국제 금융 시장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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