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포토랜치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세스넌’ 산불의 짧은 체험기다.
뒷마당이 엉망이다. 화분이 쓰러지고 포도넝쿨도 땅으로 쏟아졌다. 밤새 강풍이 불어 닥친 탓이다. TV를 켠다. 샌타애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는 것이다. 산불 뉴스도 전해진다. 전화벨이 울린다. “괜찮은 거야 ?” 친구의 목소리다. “뭐 괜찮겠지. 해마다 나는 산불이니까.”
연기기둥이 솟아 있다. 먼 거리 같이 보인다. 저러다가 꺼지겠지. 바람은 계속 몰아친다. 저 뒷마당을 어떻게 정돈해야 하나. 또 전화가 왔다. 멀리 있는 아들이다. “괜찮아. 걱정 말아라.” 그 전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이번에는 딸의 전화다.
까마귀들이 갑자기 떼 지어 날아오른다. 그 뒤로 불기둥이 치솟는다. 아니, 불이 벌써 이렇게 가까이 왔나. 시계를 본다. 어느덧 하오 2시가 넘었다. 짐을 싸두어야 하나.
바람이 이쪽을 향해 불고 있다. 긴박감이 느껴진다.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는 벌써 대피령이 내려졌다. 차를 몰고 큰길가로 나가본다. 동네로 들어오는 차량은 통제되고 있다.
해가 떨어지면서 불길은 더 선명히 보인다. 취재 차량들이 몰려들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카메라를 대기 바쁘다. 아직 강제 대피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짐을 싸야지. 중요서류 등을 챙겼다. 또 무엇을 챙겨야 하나. 두서가 안 잡힌다. 집이 타버리면 어떻게 된다지. 생각이 거기 미치자 중요하지 않은 물건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 쓰던 물건에서 평소 잘 쳐다보지도 않던 자잘한 것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자꾸 간다. 밤 11시가 넘었다. 창밖으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길 하나 차이 바로 이웃 블럭까지 강제대피령이 떨어졌다. 앞집 사람들은 다섯 대의 차에 물건을 가득 실었다. 그리고는 횅하니 떠난다.
동네는 고스트 타운이 된 것 같다. 우리만 남았나. 집안을 다시 돌아본다. 소파며, 식탁이며. 벽시계 등 모든 것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면서 ‘왜 떠나세요’ 하고 묻는 것 같다.
불기둥이 더 가까워 졌다. 그 가운데 경찰관만 눈에 띈다. 마치 전쟁 영화장면 같다. 그 광경을 뒤로하고 차를 몬다. 큰 길에는 불을 피해 탈출하는 헤드라이트 행렬이 이어져 있다.
길거리까지 나와 안내를 한다. 자원봉사자들이다. 인근의 셰퍼드힐스 교회는 임시 대피소가 됐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안도감이 밀려온다. 커피를 한 잔 마신다. 맛이 새롭다. 곧 돌아가게 되겠지. 멀리 보이는 불기둥을 보며 애써 자위를 한다.
그 옆에도 큰 교회가 있다. 한인교회다. 외양으로는 더 커 보인다. 그러나 닫혀 있다. 저 교회도 문을 열고 사람들을 받아들였으면. 황망한 가운데 스치는 생각이다. 한 밤중에 친척집으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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