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비즈니스우먼들이 머리손질과 의상 등 외양 가꾸기에 바쁜 시간을 쪼개내듯이 전문직 남성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가꾸기 버전이 있다. 슈샤인, 구두닦기 - 여성들이 거의 관심을 안 쏟는, 그러나 많은 남성들은 정규적으로 세심한 신경을 쓰는 뭐랄까, 하나의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구두닦는 4달러까지… 요즘은 누구나 다 그래요”
뉴욕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만 위풍당당한 마호가니 빛 가죽 의자를 비치한 5개의 슈샤인 스탠드가 있다. 하루 평균 고객은 약 700명, 대다수가 비즈니스맨들이다.
그러나 요즘은 손님이 눈에 뜨이게 줄었다. 지난 2~3 개월만에 하루 100명 정도가 빠져 600명 안팎이라고 구두수선까지 겸한 5대 슈샤인 스탠드의 소유주 에디 아다이는 말한다.
1999년 이 비즈니스를 인수한 이래 요즘 같은 불경기는 느껴본 적이 없다는 그에 의하면 아예 발걸음을 끊은 손님도 있고 일주일에 5회씩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던 단골도 3회로 줄였다는 것. 구두 굽을 갈은 후엔 반드시 구두를 닦아서 신던 사람들도 요즘엔 굽만 갈고 닦지 않은 채 그냥 가는 것이 보통이다.
“봐서 내일 닦든지, 하고 그냥 가는 손님들이 늘었습니다. 매일 ‘예스’하던 사람들이 이젠 하루는 ‘예스’, 하루는 ‘노우’하는 거지요”
슈샤인 경기의 하락세는 도시의 심리현상에 대한 하나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프리랜서 삽화가나, 유치원 교사,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1일 7달러의 스타벅스 커피값을 아끼기 시작하는 것과 ‘우주의 지배자’로 자타가 칭하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를 신고 누비던 은행가, 부동산업자, 증권가 딜러들, 높은 슈샤인 의자에 앉아 자신의 발에 신겨진 멋진 프라다 로퍼가 말끔히 닦여지는 동안 월스트릿 저널을 훑어보던 그들이 지갑에서 4달러 꺼내기를 주저하게 되었다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다.
부자들도 경제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많이 보도되었지만 보통 별장의 부엌 리모델링을 연기했다든가, 지중해 섬으로의 휴가를 포기하고, 호사스런 크리스마스 파티의 규모를 줄여야겠다는, ‘배부른’ 걱정들이었다. 그러나 구두닦이의 불황은 그 정도가 상당히 깊어졌음을 반영한다. 최고 부유층들도 돈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구두를 닦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한 잔의 커피처럼, 한 대의 담배처럼 그건 4달러로 얻는 잠시의 ‘브레이크’다. “요즘 직장은 너무 우울해요”라고 구두를 닦은 한 양복차림의 신사는 말한다.
“구두를 닦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전보다는 덜 자주 닦지요. 점심 샌드위치를 고를 때도 값을 먼저 봅니다”라고 5번가의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한 투자 은행가는 말한다. 곁에 섰던 한 부동산 브로커의 생각도 비슷하다. “난 전엔 1주일에 두 번 닦았지만 이젠 한번으로 줄였어요. 구두 닦는 값 자체보다 돈에 대한 마음이 그래요. 요즘은 누구나 다 돈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또 비즈니스가 신통치 않으니 반짝거리는 구두신고 갈 곳도 줄었고…”
이같은 불경기의 여파는 뉴욕시 구석구석 마다 크고 작은 걱정의 한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하다 그랜드센트럴 역에 있는 스타벅스로 커피를 마시러 나가는 사람이 줄면, 나온 김에 에디스에서 구두 닦던 사람도 줄고, 구두 닦는 손님이 줄면, 에디스에서 일하는 이민자 종업원들의 팁 수입도 줄어든다.
14세 때 우루과이에서 구두닦이로 시작한 이후 현재 뉴욕에서 가장 성공한 구두수선업 중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 에디 아다이는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모든 현상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의 사업도 마찬가지다. 구두를 닦는 손님은 줄었지만 대신 새 구두를 안사고 헌 구두를 고쳐 신는 손님들은 늘었다.
그의 비즈니스는 당장 그리 빛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밝은 내일로 가고 있는 뉴욕시 새로운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뉴욕타임스-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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