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시민권자 1호인 서재필 박사가 미국에 살고 있을 당시 국무부에 여권을 신청한 기록이 발견됐다.
여권 신청 날짜는 1895년 11월 7일, 접수 날짜는 8일. 1865년 11월28일 생인 서 박사가 30세가 막 되는 해이고 1885년 미국에 이주한 지 꼭 10년만이다.
서 박사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여권 신청 서류에 의하면 작성자의 이름은 ‘필립 제이손(Philip Jaishon)으로 명기돼 있으며 거주지는 워싱턴 DC, 시민권은 펜실베니아주 Lugene 카운티에서 1890년 6월 14일에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한국(Korea)서 태어난 서 박사는 1885년 5월25일 일본 요코하마로부터 ‘북경성(City of Pekin)’ 호를 타고 미국에 입국했다. 이 같은 기록을 근거로 할 때 서 박사는 1885년부터 1895년까지 펜실베니아와 워싱턴 DC,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1890년 6월19일 펜실베니아주 ‘윌커스 베레’에 있는 ‘루슨(Luzerne)’ 카운티 법원에서 선서하고 미국 시민이 됐다.
자신의 직업을 의사라고 밝힌 서 박사는 여권 신청서에 해외 체류 기간을 2년으로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서 박사가 자신을 묘사한 인상 기록.
서 박사는 키가 5피트 10인치에 튀어나오고 둥근 이마를 가졌으며 짙은 밤색 눈에 매부리코(aquiline) 모양의 코를 가졌다. 또 입은 중간 크기(Medium size)이고 턱은 둥글며(round) 피부색은 ‘올리브(Olive) 색깔이다. 서 박사는 자신의 얼굴 형태를 계란형으로 묘사했다. 살고 있던 집의 주소는 1500 13th St., NW.. Washington DC, 여권 신청 기록 공증인은 1017 NW Washington DC에 거주하고 있는 제임스 C. 화이트씨였다.
연방의회 도서관에서 서재필 박사의 교회생활 관련 자료를 조사하다 이 서류를 발견한 손상웅 목사(시드선교회 국제본부 연구실장)는 “최초로 공개되는 기록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서 박사의 일상의 한 면을 보여주는 자료여서 관심을 끈다”며 “당시 카메라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아 여권 신청자가 자신의 용모를 서류에 자세히 기록해야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주미한국대사관, 서재필 기념재단 등 한인사회는 미주 한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서재필 박사를 선정, 지난 5월 워싱턴 DC에 소재한 워싱턴 총영사관 앞에 서 박사 동상을 세웠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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