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이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오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머니는 바쁘셨다. 우리 집 큰 대문 위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신다. 소나무와 대나무를 엮어서 그 위에 솜을 크고 작게 얹는다. 그 솜으로 마치 푸른 솔잎에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아름다웠다. 어린 나의 눈에도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리인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방학 때에 집에 갈 때면 내 마음은 부풀어 있었다. 어머니의 트리가 빨리 보고 싶어서였다.
어릴 때 시골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연극을 하곤 했다. 나도 뭔가를 하고 싶어서 따라 다니면서 떼를 쓰기도 했다. 그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상품도 주고 선물 교환도 하면서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어린 나는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 교회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아마 새벽송에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았다. 새벽쯤이면 새벽송을 부를 분들만 모여서 캄캄한 길을 떠났다. 대부분 청년들과 어른들 몇 분인 것 같았다. 꼬마인 내가 빠지지 않고 따라 다녔다.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 호롱불을 든 사람들은 앞에 서고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맨 먼저 가는 집이 우리 집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만드신 아름다운 그 트리 앞에서 새벽송을 불렀다. 맛있는 떡국을 어머니는 미리 준비해 두셨다. 새벽에 우리는 따끈한 떡국을 먹고 그렇게 한집 두집 날이 훤할 때까지 새벽송을 불렀다. 양말을 두껍게 신었어도 나중에는 손도 시리고 발도 시리었다. 그래도 찬송을 부르면서 즐겁기만 했다.
시골 교회에서는 밧줄을 잡아 당겨서 종을 쳤다. 나는 그 종이 치고 싶었다. 그래서 목사님께 종을 치고 싶다고 했다. 새벽종이 치고 싶어서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우리집에서 교회를 가려면 돌 자갈길이었다. 앞이 잘 안 보이는 캄캄한 밤 그 길을 걸어가도 나는 무섭지가 않았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나오게 해달라고 오래 오래 종을 치던 일들. 주일학교 선생님이 예수님은 거지처럼도 온다고 했다. 그래서 거지만 보면 예수님인 줄 알고 아낌없이 가진 돈을 다 주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눈물겨운 그리움이었다.
그리하여 내 마음 밑바닥에 자리한 그분. 내 인생 여정 끝날 때까지 나를 지키실 그분. 또 한해가 저물어 가는 이때에 나의 산타 할아버지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거지로 오신 예수님은 뭐라고 하실까? 아마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도 그 사랑 베풀어라”고 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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