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정책 평가해보면
9·11이후 ‘제왕적 지도자’돌변… 세계 분열·대립구도로
1조 3,500억달러 감세 탓 천문학적 적자… 후임자에 ‘큰짐’
중국·인도와 협력 확대·에이즈 확산 방지 지원 등 호평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8년 정권이 사흘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000년 앨 고어 전 부통령과 법정까지 가는 ‘플로리다의 혈투’ 끝에 힘겹게 백악관을 차지한 부시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격변의 시간을 보냈다. 8년의 세월이 저무는 지금 미국은 부시 대통령이 벌인 두 개의 전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외교에서도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권위와 도덕성을 잃고 국제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부시 대통령이 남긴 8년의 유산은 일부 업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위상을 후퇴시켰다는 어두운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프간에서 시작해 아프간으로 끝난 대외정책
부시의 미국은 정권 출범 9개월 만에 터진 초유의 9.11 연쇄 테러로 운명이 결정됐다. ‘작은 정부’와 ‘온정적 보수주의’의 기치를 내건 부시 대통령은 9.11 이후 ‘제왕적 지도자’로 돌변했다. ‘미국의 안전’을 명분으로 세계를 ‘미국화’ 하겠다는 제국주의적 신념은 세계를 ‘적 아니면 동지’라는 분열과 대립의 구도로 갈라놓았다.
부시 대통령은 9.11 사흘 뒤 대국민 연설에서 “악의 세계를 제거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책임”이라며 ‘세계는 우리 편에 설지 테러범의 편에 설지 선택하라”고 협박했다.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존 볼튼 유엔대사 등 부시 주변을 철옹성처럼 에워싼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전도사를 자청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9.11로 촉발된 ‘선과 악’의 대결의 시발점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하는 탈레반 정권을 응징하기 위해 시작된 이 전쟁은 이라크전으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결과적으로 미국의 외교를 수렁에 빠뜨렸다. 2001년 10월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만 7년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이라크전은 악을 응징하겠다는 도덕적 사명감과 제국주의적 야욕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끝까지 반대한 이 전쟁을 부시가 감행한 표면적인 이유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WMD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이라크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전쟁의 명분은 허구임이 드러났다. 세계는 부시 대통령이 중앙정보국(CIA)의 허위 정보에 놀아났는지, 처음부터 조작된 정보에 따라 전개된 시나리오였는지 의심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나타난 일방주의는 다른 외교 현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됐다.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기후변화에 관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고, 해외 파병 미군의 범죄행위를 비호하기 위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출범을 저지했다. 미국의 이익 앞에서 세계 공통의 이익은 내동댕이쳐졌다.
흑자재정의 유산을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최악의 금융위기로
미국 국내적으로는 양극화와 경제위기로 점철된 8년이었다. 2001년 3월 출범하자마자 시작된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로 첫 침체기를 맞은 부시 대통령은 ‘100년 만에 최악’이라는 금융위기를 차기 정부에 떠넘기는 무능한 경제대통령으로 마감했다. 빌 클린턴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2,360억달러의 흑자재정을 넘겨받은 부시 정권은 2008년 기준으로 4,55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는 적자 규모가 1조달러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토머스 훠런 보스턴대 교수는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 정부에게서 꽤 괜찮은 나라를 넘겨받았으나 오바마 당선자에게는 큰 짐을 떠넘기고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에이즈 확산 방지, 중국ㆍ인도 관계 증진 등은 성과
물론 성과도 없지 않다. 신흥 대국인 중국, 인도와 협력관계를 공고히 한 것이나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공적이다. ‘낙제학생 방지법’을 제정해 공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가혹할 정도로 좋지 않다.
뉴스위크는 “부시 대통령의 성적이 역대 대통령 중 꼴찌인 43등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AP통신은 대통령의 공과를 현시점에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국민의 삶의 질을 기준으로 볼 때 부시 대통령은 “잘 해야 양론이 교차하는 정도”라고 전했다.
■부시의 말말말
“신발테러는 가장 특이한 경험”
▲ “ 나는 인류와 물고기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2000년 9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설명하면서)
▲“나는 죽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2001년 9월, 9.11테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과 대화한다는 것을 잘못 말하면서)
▲ “테러 국가들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려고 무장하며 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2002년 1월29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 첫 국정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북한 이라크 이란을 지목하며)
▲“가난한 사람이라고 꼭 살인자는 아니고, 부자가 아니라고 해서 사람을 죽이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다.”(2003년 5월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여왕께서는 1770, 아니 1976년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에도 참석하셨다.”(2007년 백악관 잔디밭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맞으면서)
▲“우리의 적들은 창조적인데다 재력이 풍부한데, 우리도 그렇다. 그들은 우리 나라를 해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데, 우리도 그렇다.”(2004년 8월, 국방예산안을 서명하는 자리에서)
▲“그의 아내는 텍사스 여성이에요, 나처럼.”(2004년 상원의원 빌 프리스트를 환영하는 연설에서)
▲“브라우니, 자넨 엉망으로 일을 했어.”(2005년 9월 2일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대응에 실패한 후 미 연방재난관리청 청장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허리케인은 피부 색깔을 봐 가면서 덮치지 않았다.”(2005년 9월12일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지역인 뉴올리언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신발 테러는 내가 대통령이 된 후 겪은 가장 특이한 경험.”(2008년 12월16일, 신발을 던진 이라크 기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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