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새 해 첫 달은 새로운 결심을 하는 사람들로 피트니스 센터가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이번 정월은 불황으로 그닥 재미를 못 보고 있다지만.
그래, 새로운 해다. 누구나 건강에 대한 결심을 한 가지씩 하는 때. 나 역시 작은 글씨로 일기장 첫 페이지에 써 넣은 목표가 하나 있긴 하다. 일주일에 최소한 세 번 이상 산책하기.
산책이라… 참 고즈넉한 여유가 느껴지는 행복한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다분히 치열하고 고통스런 노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어릴 때부터 걷는 것만큼은 제일 자신 있어하고 좋아라 했었는데 자나 깨나 자동차에 몸을 싣고 돌아다니는 미국생활이 시작된 즈음부터는 도무지 걸을 일이 생기질 않았다. 나날이 풍성해지는 몸피를 보면서 해마다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시간을 따로 내어 걷는다는 게 왜 그리도 어렵던지. 아마도 임신하고 매일 매일 걷던 그 때가 내 인생에서는 최고로 꾸준히, 그리고 자발적으로 몸을 움직인 때가 아닌가 싶다.
차 안에 항상 운동화를 한 켤레 두라든지, 가능한 멀리멀리 주차를 하라든지, 아이 픽업을 걸어서 가라든지, 점심 시간을 반으로 쪼개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든지 등등. 걷기를 자극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안 써본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꾸준히 지켜내지 못했다. 날씨가, 아이들이, 내 기분이 등등 언제나 훌륭한 핑계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어쩌구 하는. 하지만 마라톤은 커녕 달리기 조차 즐겨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독일 정치인 요쉬카 피셔가 뚱보에서 마라토너로 변신한 달리기 이야기를 읽었다. 글을 끊임없이 쓰기 위해 중독처럼 달리기를 한다는 무라까미 하루키의 이야기도 읽었다. 그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그 경지, 달리기 시작해서 어느 시점에 이르면 갑자기 무아지경에 이른 듯 머리가 맑게 개이고 몸의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는, 그 기분이 못견디게 궁금하고 부러워 죽겠다. 그렇다고 인생을 알기 위해 마라톤에 뛰어들 용기따위, 내게는 한 점도 없다. 자기만의 속도를 알고 자신을 다스리면서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엄숙한 명제를 어쩌면 나는 평생 깨닫지 못하게 되겠지.
쉬엄쉬엄 걷는 할아버지며, 맵시있는 운동복을 갖춰입은 할머니며, 쌍둥이 조거를 끄는 아줌마며, 몸을 숙여 싸이클을 타는 아저씨들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게으르게 발을 까딱거리며 운전대를 휘휘 돌리는 차 안의 나를 말없이 질책하는 듯했다. 그래, 엄동설한도 아닌데 그 동안 너무 나태했어. 어느 날 아침 산책길에 나서본다. 많은 사람들이 깨어 동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먼저 놀라고, 천천히 걷는 백발의 어르신을 빼곤 대부분이 힘차게 뛰어다닌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모처럼 퍼올린 사기가 팍팍 떨어지면서 사지 튼튼한 나도 어쩐지 그들 뒤꽁무니를 쫓아 냅다 뛰어야 할 것같은 부담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훈련 안 된 내가 속도를 냈다가는 이내 볼썽사납게 헐떡거리며 나가떨어지겠지.
내 식대로 걸어보자. 인생의 거창함을 나는 산책으로 다져보리라. 그 흔한 아이팟 하나 없어도, 몸에 착 붙는 조깅복이 없어도, 모자 하나 눌러쓰고 운동화 꿰어차면 준비 끝. 무조건 집을 나서 보자. 만보계에 집착하지 말고 살을 빼겠다는 욕심도 잠시 뒤로 접어두자. 동네 곳곳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씩씩하게 팔을 흔들며 걷자. 새 해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몸과 마음의 군살을 빼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좋다. 지금이 제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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