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저무는데 고향이 그 어디인가. 안개로 뒤덮인 강 위 수심에 잠기네.(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성당(盛唐)때의 시인 최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해가 질 무렵 황학루에 올랐다. 쓸쓸한 정자위에서 안개 자욱한 강을 내려다보다가 불현듯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를 버린 것은 사람이 아니다. 바로 시간과 공간이었다.
시간이란 옛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은 어느덧 사라져 다시 돌아오지 않고 저녁 안개 속에 강물만 무심히 흐르고 있음을 말한다. 공간이란 눈앞에 우거진 수풀 등 자연의 풍경은 여전한데 고향이 어디인지 모호해졌음을 의미한다.
고향집이 자꾸 눈에 밟힌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떠나온 집, 마당, 우물, 다니던 오랜 학교 건물 그리고 먼지투성이의 동네 가게. 그런 것들도 진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부랴부랴 고향을 찾는다.
그렇게 찾아간 고향이다. 그 고향이 그런데 없다. 없어졌다. 어머니는 안 계시다. 마음속에만 계시다. 그 인자한 미소와 함께. 그리던 집도 없어졌다. 공간은 분명히 그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이 아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는 조그만 언덕, 빛바랜 학교의 담, 몇 그루의 나무들은 남아 있다. 그러나 실망이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향이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고향은 마음속에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랑자는 결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고 한다. 진정한 의미의 집, 진정한 고향은 홀로 마음속에 간직한 채 방랑자들은 멍하니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설날을 맞아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고 있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다. 고속도로가 빙판이 됐다. 곳곳이 눈사태로 난리다. 그래도 사람들은 고향을 찾는다. 그 귀성객 인파는 마치 민족 대이동을 연상시킨다는 한국 신문들의 보도다.
가족 친지들이 모였다. 그러나 예전 같은 활짝 핀 웃음꽃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경제가 말이 아니다. 그러니 주고받는 선물꾸러미가 가벼워졌다. 거기다가 실직의 어두운 그림자가 덮쳤다.
LA에서도 또 설을 맞았다. 어떤 의미가 있나…. 문득 떠오르는 게 역시 성당(盛唐)의 시인 이백(李白)이 나그네 길에 지은 시 구절이다. “대체 어디가 타향이라, 내 고향이나 다름없다.(不知下處是他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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