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은 강호순의 연쇄살인을 계기로 사형제 존폐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사형제 논란은 사회적인 파장이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잠잠해지는 순환을 반복해 왔다.
몇 년 전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잡혔을 때 그랬고 사형수를 다룬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영화화 되면서 또 한 차례 사형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환기되기도 했다. 강호순의 극악무도한 범죄에 치를 떨고 있는 지금의 여론은 그를 반드시 사형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압도적이다.
한국은 사형제를 갖고 있지만 오랫동안 시행을 하지 않고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지난 1997년 12월 23명에 대해 한꺼번에 형을 집행한 후 12년 이상 단 한 번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 앰네스티’는 한국을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형제 존치와 관련한 사회적 논쟁은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사형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사형제에도 불구하고 범죄가 날로 흉포화 되는 것은 이 제도가 더 이상 범죄억지에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쓴 작가 공지영은 소설 취재를 위해 만났던 범죄 전문가들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들려줬다. “모든 범죄자들의 공통점이 죽이는 순간에 ‘내가 살까, 죽을까’하는 생각을 전혀 안 한다고 해요. 다만 ‘잡힐까, 안 잡힐까’는 생각한다고 하더라구요. 심지어 사람의 목숨을 생으로 빼앗는 지경에 가면 그 사람들은 이미 죽음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보여요. 유영철은 사형제 폐지운동을 벌이는 신부님을 보자마자 ‘신부님, 저 죽은 다음에 다시 폐지운동하시죠’라고 조롱하듯 말했다는 거예요.”
반면 사형제 찬성론자들은 실질적인 범죄예방과 처벌효과를 들어 존속을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30년간 발표된 많은 논문들은 사형이 한번 집행될 때마다 적게는 8건에서 많게는 24건에 이르는 살인사건이 예방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 복잡한 통계기법을 사용해 처벌과 범죄 억지효과를 연구해 온 아이작 에를리히 교수이다. 그에 따르면 사형집행 수치를 1% 늘리면 살인사건 발생률이 약 0.5% 정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형집행률보다는 피의자들에 대한 유죄 선고율을 높이는 것이 살인사건 예방에 2배 정도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어쨌든 통계를 근거로 사형제와 살인사건 발생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온 학자들은 “사형제가 살인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반대론자들은 이런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미국 내의 사형집행 건수가 너무 적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형제는 쉽게 결론이 지어질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징벌 효과라는 효율성의 문제뿐 아니라 처벌을 명분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가 라는 종교적, 윤리적인 문제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에를리히 교수는 사형제도의 살인 억지효과를 처음으로 규명한 학자이다. 그런데도 그는 아주 열렬한 사형폐지론자이다. 이 같은 아이러니는 사형제 논란이 왜 항상 진행형일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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