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 이셨다” (요1:1). 희랍어 로고스는 ‘말을 모은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희랍사상의 로고스 개념 속에는 창조적인 말의 능력으로서의 ‘말씀’의 사상은 없다. 그러므로 로고스 개념은 구약과 신약의 ‘말씀’과 구별된다. 따라서 말이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의 말씀과 교훈뿐만 아니라 그의 말과 삶을 합한 한 말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과 말씀을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과 말씀은 다르다. 말씀은 진리지만 말은 진리가 아니다. 말은 말씀이 될 수 없다. 말을 말씀과 동일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진리인 말씀보다는 사람의 말에 매달리게 된다. 그래서 길(道:진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말은 말씀에 이르게 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말(言)은 말(馬)인 것이다. 그래서 다석 류 영모 선생은 말씀(言)을 말(馬)에 비유하여 말씀을 타고 가야 한다고 한다. 말씀은 많지만 나에게 빛이 되고 나를 영원의 길로 인도할 말씀은 한(一)말씀만 있어도 된다고 한다.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3절에서 거듭났고, 웨슬레는 로마서 1장 17절에서 가슴이 뜨거움을 느꼈다. 더 나아가 류 영모 선생은 말씀을 들었으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말씀을 듣고도 누어 자려고만 하고, 자지 않으면 서로 기어 올라가 놀려고만 하니 이래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짐승만도 못하다 하며 말씀을 듣고 일어섬과 위로 올라감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 가는 길은 말을 타고 가는 수밖에 길이 없다. “말(馬)아 하나님의 말씀(言)아 말 물어 보자. 어느 말씀이 나로 생각케 하고, 불태우고, 나를 태울(乘) 말씀인지 찾아보고 물어 보아야 한다. … 내가 타고 갈 말(馬)은 한(一) 말씀(言)뿐이다. 그 한 말씀에게 내 운명이 달려 있다. 내가 부활하느냐 멸망하느냐는 말씀 한마디에 달려있다. 그 한마디를 내가 풀어내야 한다. 즉, 물음, 불음, 풀음이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 한 말씀을 풀어내야 한다. 내가 타고 나갈 말씀(言)은 너 자신이 풀어내어, 그 말(馬)을 타고 달려야 한다”.(윤동주의 다석 류영모에 대한 연구 중에서)
요즈음 한인 마켓 입구에는 말(馬)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모양도 다양하다. CD, 카세트 테이프, 간행물 등등......다 진리인 말씀(言)을 풀어 놓은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많다는 것은 말씀으로 이르기가 쉽다는 말도 될 수 있고, 한편으로는 참 말씀에 도달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어느 말(馬)을 선택하느냐는 자유이지만 자칫 잘못 하면 엉뚱한 길(道:진리)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 운명을 맡겨야 할 말(馬)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참 말씀(言)으로 타고 갈 말(馬)은 내가 정해야 한다. 나 자신이 말씀(言)을 풀어 내 말(馬)로 삼아 타고 가야 한다. 쉽게 가려하지 말고(“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7:13) 한 말씀 붙들고 목숨 걸고 참구하면 내가 타고 가야 할 말(言)이 보이는 법이다. 게다가 하나의 말씀이 풀리면 다른 모든 말씀은 저절로 풀린다. 이렇게 되면 위로부터 내려온 말씀(言)을 풀어 말(馬)로 삼아 위로 올라가 말씀(하나님)을 만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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