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덜레스 공항에는 주미대사관 직원들로 붐볐다. 이날 대한항공 편으로 서울로 귀국하는 이태식 대사의 환송을 위해서다.
수십 명의 외교관들은 일찌감치 공항으로 나와 이 대사를 기다렸다. 이 대사는 오전 10시40분경 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았다.
공항의 이별식은 길었다. 이 대사를 보내는 고급 외교관들의 표정은 자못 숙연하고 섭섭함이 넘쳐났다. 어찌 보면 대사관 직원들로서는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미외교의 야전군 사령관으로 3년5개월을 재임한 이 대사와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십 명이란 출영객의 ‘숫자’와 ‘시기’였다. 예부터 물 건너 떠나는 이를 보내는 한국식 예법의 극치는 공항의 이별이었다. 좋게 해석하면 35년 외교관 생활을 마감하고 떠나는 노 외교관에 최대한의 경의를 보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사관 직원들 역시 동포사회와 마찬가지로 이미 이 대사를 위한 작별의 의식을 충분히 치렀다. 세계화 시대에 공항의 이별은 이젠 구문이 됐다. 더군다나 4일은 평일이었다. 외교관들이 근무시간에 업무를 제쳐놓고 퇴임 상사를 위해 너도나도 공항으로 달려 나간 점은 송별의 예(禮)로만 해석하기엔 충분치가 않다.
시기도 적절치 않았다. 모국은 경제난에 대통령부터 서민들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분투하고 있다. 재미한인들도 대공황 이후 최대의 불경기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 몸부림치고 있는 시점이다. 이 척박한 봄에 외교관들은 산적한 업무보다 과도한 환송을 택했다.
당시 공항에 있던 동포들은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는 지금 외교관들이 업무를 제쳐놓고 공항 출영에 나온 것은 미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며 “저렇게 자리를 비우면 일은 누가 하는지 걱정이 된다”고 꼬집었다.
이 시대가 무엇을 갈망하고 요구하고 있는지 대사관 직원들은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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