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에 처음 나온 폴 새뮤얼슨의 ‘경제학’은 현대 경제학의 성서이다 (다만 성서와 달리 ‘경제학’ 교과서는 그동안 꾸준히 개정판이 나와서 최신판은 18판이다).
이 교과서에서 새뮤얼슨 교수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예로서 등대를 설명한다. 즉 등대를 세워 바다의 항로를 밝게 비추는데 이 경우 지나가는 배들한테서 그 대가를 받아낼 수 없으므로 정부가 등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등대를 세우기만 하면 지나가는 배들은 그 혜택을 공짜로 보는 ‘free rider’이므로 아무도 등대를 건설하지 않는다. 이렇게 등대에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 적용될 수 없으므로 ‘시장’이 등대를 건설하지 못하고 정부가 개입하여 등대를 세워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 등대의 예는 그 후 거의 한 세대동안 경제학계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사용하였다. 그러나 1974년에 발표된 로널드 코오스 교수의 논문은 경제학에서 사용하고 있던 등대의 예가 허구였음을 여지없이 보여 주었다. 실제로 등대는 항구에 있는 선박조합이 건설하고 출항하는 배들로부터 그 사용료를 징수하는 역사적 산물이었다. 즉 정부가 등대를 세운 것이 아니라 ‘시장’이 스스로 등대의 필요성을 해결한 것이었다. 이에 새뮤얼슨의 교과서도 더 이상 등대의 예를 들지 않는다.
소위 ‘IMF 사태’로 한국 등이 고통을 받았던 1998년 말 미국에서도 ‘Long Term Capital Management 소란(?)’이 있었다. 대형 헤지펀드인 LTCM이 투자 실패로 파산 위기에 직면하였다. LTCM이 파산하면 손해는 그 투자자들이 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당시 그린스팬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대형 은행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추가 투자로 LTCM의 파산을 막았다. LTCM은 자산이 1조 달러를 넘는 대형 펀드로 그 투자자들은 미국 대형 은행들과 보험/연금기관들이므로 LTCM 파산이 미국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막강할 것이라는 논리이었다.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런 조치를 반대하였다. 이는 앞의 ‘등대의 예’보다도 더 명확하게 정부 역할이 불필요한 경우이었다. 시장이 LTCM의 파산을 결정한 것이다. 이것이 시장 경제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시장 결정을 부정하고 나서는가 하는 반대이었다. 실패 없는 시장경제는 죄 없는 종교 같다.
현재 미국발 금융위기는 10년 만에 재발한 LTCM 사태이다. 다만 규모가 그 때와는 비교가 안 되고 전 금융기관들이 연루된 총체판인 점에서 양과 질, 양 면에서 차이가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은 온 몸에 피가 도는 것을 막아 몸을 죽이므로 금융기관을 살려야 된다며 정부의 구제 금융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현 위기에 대하여는 ‘시장’의 탐욕이 주범인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따라서 이를 적절히 규제하지 못한 것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 분위기다.
그린스팬 의장은 알려진 시장 신봉주의자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시장 친화적 태도를 취하다가 시장의 결정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LTCM 조치를 ‘위기 극복’의 명분으로 기습적으로 취한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시장주의자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누적된 ‘비시장적 조치’들에 대한 시장의 반란이 이번 금융위기이다. 즉 탐욕 때문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오도한 것이 누적되어 이번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특히 중국의 ‘비시장적 조치’, 즉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여 번 달러를 미국에 재투자하여 미국의 이자를 낮게 하여 미 소비자들이 그들의 싼 제품을 낮은 이자로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만약 미국이 시장적 접근을 하였더라면 21세기 초 미국의 부동산 시장 버블은 없었을 것이고 이번 위기의 폭도 이렇게 까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요진 /USC BEN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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