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이 되기까지 따뜻한 말을 들어본 기억이 한 번도 없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식이 생긴 후 들어온 말은 욕지거리 아니면, 무서운 저주의 말뿐이었다고 한다.
일찍이 고아가 됐다. 그러다가 무작정 서울로 갔다. 본격적인 거지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버려진 거리의 삶에서 그가 배운 언어는 욕에, 아주 저속한 상말밖에 없었다.
6.25가 터졌다. 이 거지 소년은 일거리를 얻는다.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다. 그리고 그 때 알게 된 미군 대위에게 양자로 입양돼 미국으로 오게 된다.
이후 그의 삶은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뒤늦게 향학열에 불탄 것이다. 그러나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아는 한국말은 욕지거리밖에 없었다. 아는 영어라고는 눈치코치로 때리는 몇 마디 콩글리시가 전부 다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양아버지가 어깨를 두드리며 한 마디 했다고 한다.
“Son, I trust you.” 난생 처음 자신을 믿어준 그 말 한마디에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하루 3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서 공부했다. 그렇게 해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갔다. 이후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됐다. 그리고 워싱턴 주 상원의원이 됐다. 신호범씨 이야기다.
“그 때 양 아버지의 말 한 마디가 내 인생의 항로를 바꾸었다.” 훗날의 회고다.
울고 있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가슴으로 안아 주었다. 그리고 믿어주었다. 그 신뢰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온통 한국야구 이야기다. 그럴 만도 하다. 내로라하는 메이저 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강팀을 연파하고 정상의 입지를 다졌으니. 그중에서도 특히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는 추신수선수의 부활 스토리다.
명색이 한국 팀 유일의 메이저 리거다. 그런데 성적이 영 말이 아니다. 타율이 0.100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 경기 한 경기 피를 말리는 승부다. 그 중요 고비에서 연방 헛방망이질을 하는 추신수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그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 신뢰에 대해 추신수는 결국 화끈한 한 방으로 보답했다.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에서 3점 홈런을 날려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다.
“끝까지 믿어준 김인식 감독님과 여러 코치님들, 그리고 위로를 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그가 울먹이며 한 말이다.
불황이다. 살기가 어렵다. 이럴 때 일수록 필요한 것이 따뜻한 격려다, 믿음과 신뢰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럴 때 고통분담이 이루어지고 결국 보답이 따른다. ‘김인식호의 팀 코리아’가 행동으로 보여준 교훈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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