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카운티의 멕시코 인은 340만명에 이른다. 5년전 센서스 자료이니 통계 밖의 인원을 더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에는 1,200만, 미 전국을 치면 3,600만명이라고 센서스가 전하니, 인구만 따지면 미국 안에 ‘또 하나의 멕시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남미 인을 통칭하는 라티노, 히스패닉은 지역에 따라 출신 국가별 분포가 다르다. 이 중에서 LA는 멕시칸 디아스포라의 수도라고 할 수 있다. LA 히스패닉 주민 중 70% 이상이 멕시코 인이다. 뉴욕, 뉴저지 등 동부에는 남가주에서는 드문 푸에르토리코 인이 많다. 마이애미는 근 절반이 쿠바 출신. 다른 지역의 히스패닉 커뮤니티는 대부분 다양한 국가 출신들로 이뤄져 있다. 라티노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출신 국가별로 특성이 있다. 엘살바도르 다르고, 과테말라 다르다는 것이 이들 속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의 경험담이다.
지난 달 LA, 시카고, 오스틴 등에서는 이민세관 단속국(ICE)의 이민 단속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었다. 주 단속 대상이 라티노였기 때문에 시위 참가자도 이들이 많았다. LA에서는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다운타운 일대에 드물게 통행금지령도 내려졌다. 이 때문에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리고 있던 한국 클래시컬 음악 제전인 ‘서울 페스티발’의 마지막 일정도 취소됐다.
시위에서 주목받은 것은 멕시코 국기였다. 월드컵 응원전에서 봤던 초록, 빨강, 흰색으로 된 멕시코 국기가 뽀얀 최루 연기로 덮인 시위현장에서 펄럭였다. 일부 시위대는 성조기를 흔들기도 했으나 미국인이나 언론의 눈길을 끈 것은 멕시코 국기였다. 멕시코 독립 운동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미국의 도심 복판에서 왜 멕시코 국기를 흔들어 대는가.
LA의 시위 현장에 본격적으로 멕시코 기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30여년 전의 일이다. 당시 주민발의안 187의 통과로 서류 미비자의 건강, 소셜 서비스 혜택이 금지되고, 이들 자녀의 공립학교 교육기회도 박탈될 위기에 놓이자 극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현장에서 멕시코 국기가 목격되기 시작했다. LA한 고교에서 열린 시위에서는 ‘전에는 우리 땅을 뺏더니, 이제 우리 교육마저 빼앗으려 드는가’라는 말도 들렸다. 캘리포니아가 한 때 멕시코 영토였던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 후 시위 현장에 마치 심볼처럼 등장하고 있는 멕시코 국기를 지켜본 적지 않은 미국인은 눈살을 찌푸린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대규모 시위는 폭동과 약탈로 이어지는 예가 적지 않다. 폭동 현장에서 펄럭이는 멕시코 국기. 국토안보부는 옳다구나 하며 이런 현장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퍼 날랐다. ‘외국 국적자들이, 외국 국기를 흔들며, 미국법을 어기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시위 현장의 멕시코 국기는 미국민들에게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멕시코 국기는 공감 보다는 거부 반응, 지지 보다는 혐오를 불러와 역효과라는 것이다. 인종별로는 특히 백인들에게 이런 의식이 뚜렷하다.
좀 오래 된 통계(2016년)이긴 하나 이민과 관련한 시위 현장에 멕시코 국기가 등장하는 것에 대한 미국민의 반응을 조사한 것이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백인의 70%는 거부반응을 보였다. 라티노 주민과 흑인은 30% 좀 넘게, 아시안은 절반 정도가 역시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민과 불체자는 미국 국내 문제인데 여기 외국 국기가 등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혹여 미국 국내 문제로 시위에 참여할 일이 있다면 현장에 태극기를 들고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여기는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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