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 내가 숨을 수 있는 작은 다락방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비스듬하게 내려앉은 낮은 천장은 맑은 통유리로 만들어져 밤이면 별도 바라볼 수 있고, 비가 내리면 방 안에서 고스란히 비를 맞는 듯한 운치와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예쁜 다락방을 갖고 싶다.
어린시절 내가 살던 집에는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동생들이나 친구들과 사소한 일로 다투었거나 엄마에게 야단맞고 그 누구도 보기 싫을 때, 혹은 무언가 사고치고 숨고 싶을 때면, 나는 작은 다락방으로 기어올라가 그곳에서 혼자 앉아 있고는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저절로 풀어졌었고, 친구네나 방학 때 사촌네 놀러가도 제일 먼저 올라가 놀던 곳도 높은 다락방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어둡고 먼지 투성이로 기억될지 모르는 다락방이 나에게는 왜 즐거웠던 추억의 공간으로 남겨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붕의 작은 쪽창으로 들어오던 바깥의 환한 햇살들과 그 하얀 빛 안에서 부유하던 먼지들을 따라다니며 주위를 둘러보면 다락방의 어두움은 금세 눈에 익었었다. 구석에는 자주 쓰이지 않는 물건들이 놓여져 있던, 내가 일어서면 머리를 굽혀야했던 그 다락방에는 조청항아리나 꿀단지가 놓여 있었고, 색색의 실들이 담긴 반짇고리나 손으로 뜨다 만 뜨개질 바구니, 할머니가 감추어 놓은 사탕이나 한과가 있었다. 그리고 저녁무렵에는 다락방 나무바닥 아래 부엌에서 엄마가 딸그락거리며 밥하는 소리가 들리고는 했다.
언제부터인가 눈에 보이지 않아 잃어버린줄 알았던 소꿉장난감들과 내가 그려낸 많은 종이인형들, 산발한 머리와 얼굴에는 수염이 그려진 인형들을 나는 그 곳에서 찾아냈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림 일기장과 친구들과 주고받은 짧은 편지들, 나의 어린 마음에 들어와 손으로 베껴놓았던 문장들을 발견했던 곳도 그곳이었고,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군데 군데 눈물 자국으로 번진 글자가 씌여진 종이들이 굴러다니던 곳도 그 다락방이었다.
여중시절 가사 과목에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는 시간이 기억난다. 나는 대문과 마당을, 장독대와 개집을, 커다란 나무들과 꽃밭을 종이 위에 그렸고, 몇 개의 방들과 지붕 아래 어느 구석에는 늘 작은 다락방을 그렸었다. 뒷마당 담장에 깊은 산 속에나 자랄 듯한 커다란 레드우드 나무 일곱그루가 서 있는 이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 부터, 오랫동안 마음 속에 그렸던 집같아 나는 이 집을 사랑하지만 그림 속의 나만의 작은 다락방은 가지지 못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집에서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자주 하고는 했다. 내가 아무리 꼭꼭 숨어도 아이들은 엄마인 나를 어김없이 찾아내고는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그 놀이를 좋아했던건 그 짧은 시간이 그나마 아이들로부터 떨어져 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가끔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을 때가 있었듯이 어른이 된 지금의 나도 그렇다. 집 밖의 집을 꿈꾸고 싶을 때나, 어디선가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 혹은 밥하기 싫은 날이면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다락방으로 숨어들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그 비밀스런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오래전 빛바랜 꿈들과 잊혀진 이야기들을 온전히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이 직장에 가서 집에 나 혼자 있는 시간들은 어쩌면 어렸을 적 다락방에 숨어 있던 그 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책을 읽고 무언가 끄적거리고, 예쁜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시는 시간은 그 다락방에서 찾아낸 옛 일기를 읽고, 한동안 나를 즐겁게 해줬던 오래된 소꿉장난감을 다시 찾아 가지고 놀던 그 시간들과 어딘가 닮아 있다. 그래서일까, 온 가족 밥 해대고 치우고 뭉개는 주말이나 방학이면 나 혼자 숨어 보내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다락방 시간들이 몹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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