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과 정교분리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천지개벽 이후 가장 생뚱맞은 퀴즈이다. 초등학생도, 대학교수도, 양계업자도, 계란장수도 이 질문엔 한 결 같이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필자 생각에 기독교인들은 닭이 먼저라고 주장할 것 같다. 창조주 여호와가 아담과 이브처럼 장닭과 암탉도 완성체로 창조해 알을 낳도록 만들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은 달걀이 먼저라고 우길 것이다. 모든 생물의 조상이 아메바이듯 닭의 근원도 노른자의 단세포 씨눈이라는 논리를 펼 것이다.
닭과 달걀은 선후에 관계없이 둘 다 값싸고 영양 많은 일등식품이다. 한 통속이지만 신기하게도 서로 맛이 다르고 영양가도 다르다. 미국인들은 매일 수백만 마리의 프라이드치킨(튀김 닭)을 먹어치운다. 한인들의 테리야끼 업소에서 팔리는 닭고기도 엄청나다.
달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냉장고에 달걀이 없는 집은 없다. 요즘엔 콜레스테롤 유해 논란이 있지만 필자의 학창시절엔 ‘완전식품’으로 공인된 고급 도시락 반찬이었다. 조리방법도 날 것, 반숙, 완숙, 프라이, 스크램블, 롤, 찜, 수프 등 다양하다. 유기농 달걀을 얻을 겸 불경기에 식품비 지출도 줄일 겸 뒤뜰에 닭을 기르는 한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 달걀이 유난히 더 수난 당하는 날이 있다. 부활절이다. 바로 내일이다.
부활절 달걀은 먹거리보다 노리개나 장식물로 더 많이 쓰인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은 사실은 부활이 아닌 생명체의 발달과정이다. 갈보리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예수의 십자가를 잠시 대신 메고 올라간 ‘구레네 사람 시몬’은 원래 계란 장수였는데, 그가 예수 부활 후 집에 도착하니 그동안 암탉들이 낳은 달걀이 일제히 무지개 색깔로 변해있더란다. 그 후 모든 교회가 색칠한 달걀을 자연스럽게 부활절 상징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건 전설 같은 얘기고 실제는 장삿속이다.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크리스마스에 카드와 트리, 밸런타인데이에 장미와 초콜릿, 할로윈에 캔디와 호박이 불티나듯 부활절엔 달걀과 백합꽃이 대목을 이룬다. 매년 부활절을 전후해서 미국에서 팔리는 달걀, 토끼장식(이스터 바니), 백합 등의 매출액이 자그마치 150억 달러에 육박한다.
부활절 달걀을 공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미국정부가 학생들(유치원 수준이지만)에게 용인하는 기독교적 행사는 부활절 달걀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학교에서 성경의 도덕률을 배우며 자라온 미국인들은 60년대 불어닥친 진보주의 바람속에 가치관의 혼돈을 겪었다. 공립학교의 교내기도 행위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1962년 연방대법원의 판시이후 교실 벽에서 십계명이 철거됐다. 성경책 읽기도, 식사기도도 금지됐다. 수많은 교내 특별활동 그룹 중 유독 기독교 청소년클럽만 불허됐다.
그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흐른 지금 대다수 공립학교는 범죄소굴로 전락했다. 갱 폭행이나 마약밀매는 예사고 책가방에 권총을 숨기고 등교하기 일쑤다. 실제로 대량참살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청소년 성교육도 순결보다 콘돔이용법을 더 열심히 가르친다.
이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니라 ‘정교분리가 먼저냐 국민도덕이 먼저냐’를 따질 때가 된 듯하다. 하긴, 교내기도를 불법화한 연방대법원은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 미국과 이 법정을 지켜주십시오”라는 재판 집행관의 기도와 함께 개정되고 있다.
올핸 부활절을 코앞에 두고 남가주의 한인 천주교 피정센터에서 4명의 사상자를 낸 총격사건까지 터져 마음이 착잡하다. 69세 총격범도 희생자와 함께 부활할 수 있을까?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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