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로 직행하는 버스에 오르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질 수도 있는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6시부터 진입차량이 통제된 봉하마을엔 긴장감이 역력했고 7시40분께 청와대 경호처가 제공한 버스가 사저 앞에 도착하자 취재진과 마을 주민,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감색 양복에 회색 넥타이를 매고 8시께 포토라인에 선 노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다. 실망시켜 드려 죄송하다. 잘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버스에 올랐다.
눈에 물기가 비치기도 했고 버스에 탑승하기 전 `노무현’을 연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기도 했지만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가 탄 버스는 앞뒤로 경호 차량과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봉하마을을 벗어나 남해고속도로에 진입했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서울로 향했다.
취재 차량 8대가 버스 안의 노 전 대통령 촬영을 위해 갓길로 빠지는 등의 취재경쟁을 벌이면서 한때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버스는 별 탈 없이 5시간17분 만에 대검 청사에 도착했다.
출석통보 시간보다 10분 이른 오후 1시20분께 대검 본관 앞에 내린 노 전 대통령은 취재진 앞에서 면목없다는 입장만 재확인하고는 곧장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조사에 앞서 이인규 중수부장과 녹차를 마신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사명감을 이해한다. 다만 조사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달라고 말한 뒤 1120호 특별조사실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조사를 맡은 우병우 중수1과장과 대화를 나눴으며, 오후 1시40분께부터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에 대한 질문으로 본격적인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문재인 변호사가 입회해 돕기는 했지만 조사 초반에는 노 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조사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미리 준비한 200여 개의 질문으로 속도감 있게 신문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나온 100만 달러와 500만 달러, 그리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빼돌린 12억5천만원 순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검사 3명이 돌아가면서 혐의별로 조사에 참여했고 500만 달러 관련 조사에서는 문 변호사 대신 전해철 변호사가 입회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5시간 정도 조사를 받고 나서 오후 6시30분부터는 대기실에서 수행 참모들과 곰탕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오후 7시35분부터 다시 시작된 조사는 11시20분까지 이어졌다.
검찰은 오후 10시 브리핑에서 11시부터는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을 대질신문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늦은 시간을 이유로 거부해 대질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사를 마치기 직전 노 전 대통령은 검사의 권유로 오후부터 대검 청사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 회장을 잠시 만나 악수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고생이 많지요. 자유로워지면 만납시다라고 말을 건넸고 수의를 입은 박 회장은 건강을 잘 챙기십시오라고 답한 뒤 1분간의 짧은 만남을 마쳤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를 마친 뒤 세 시간 가까이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꼼꼼히 읽었으며 자정을 훌쩍 넘긴 1일 오전 2시10분께 조서에 서명날인함으로써 길었던 조사를 마치고 대검 본관 밖으로 걸어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소회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검찰청사에 도착했을 때보다는 훨씬 밝은 표정으로 최선을 다해 (조사)받았다라고 답한 뒤 곧바로 버스에 올라탔으며 천릿길을 되짚어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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