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미스 USA대회에서 우승이 유력시 되던 미스 캘리포니아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히는 바람에 1위 자리를 놓쳤다 해서 논란이 일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동성혼 문제는 펄펄 끓는 ‘진행형 이슈’이다. 따라서 미스 캘리포니아가 사회자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했건 상관없이 찬반 양쪽 진영 중 어느 한쪽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성애에 관한 내 예전 기억들을 떠올리며 나라면 뭐라고 답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성과 사랑’이란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각 조별로 수업과 관련한 내용을 교수님과 상의해 주제 하나를 정하고 발표를 해야 했는데 우리 조의 주제는‘성적 취향’이라 이름 지은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학우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토론을 끌어내고자 다양한 자료를 준비하며 동성애자들과의 인터뷰도 시도했었다.
인터뷰 과정에서 그들의 관대함과 인내, 강한 생활력 등에 솔직히 꽤나 놀랐었다. 그들도 성적취향만 다를 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인데 나 역시 적지 않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이들 가운데는 사회의 소수파로서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에 당당히 맞서면서 일찍 독립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 모두가 자신들의 행복을 지켜내기 위한 힘겨운 ‘투쟁’의 결과였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한 동성애자는 레즈비언의 경우 동성애자이자 한국사회의 약자인 여성으로서 복합적 차별을 받는 위치에 있고, 트랜스젠더 같은 경우 한국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경제적 수단을 찾는 것 조차 힘들다며 자신의 신산스런 처지를 제쳐 둔 채 그들을 더 걱정했다.
필자가 만나본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커밍아웃의 기본 조건은 경제적 성공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뚜렷한 ‘생존 철학’을 갖고 있었으며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비난과 무례한 행동도 담대하고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방송인 홍석천씨의 경우 언론에 비춰진 것과는 달리 강한 카리스마가 있었으며 자신의 주장을 감정을 섞지 않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펼쳐보였다. 홍씨를 비롯한 동성애자들이 전개하는 주장의 핵심은 인권에 바탕한 행복 추구권이었다.
동성애자들과 직접 만나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관심 밖의 일이고 아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문제를 방관하는 것은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동일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무관심한 일이 그 사람들에게는 생존권 자체고 행복권의 뿌리였다면 나의 방관은 무책임으로 연결될 수 있다.
얼마 전 중국에서 한 부부가 뺑소니에 치여 길에 쓰러져 있는데도 사고 현장을 지나가는 주민들이 신고도 하지 않고 도움도 주지 않아 그 자리에 그대로 방치돼 죽었다며 남의 일에 무관심한 중국인을 비판했던 월드 뉴스를 본적 있는데, 개인주의에 빠진 나의 무관심도 그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도 국민의 기본적 의무를 이행하고, 경제활동을 통해 국가경제를 이끌어가는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이웃으로, 그리고 공동체의 조직원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성적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쏟아지는 차별을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동성애자들을을 향해 빗발치듯 날아드는 비난은 종교적 가치관과 전통적 사회윤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전통적 가치’를 앞세워 개인의 행복을 짓밟고 무시하고 거부하는 행위가 정당화 된다면 민주사회의 초석을 이루는 만인평등의 개념 자체는 무너지고 만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기호의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틀린 것’과 ‘다른 것’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타인의 행복추구권에 참견하려드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순이다.
<박희정 인턴기자> graciahj@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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