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가 맞을까, 찌게가 맞을까? 종가집이 맞을까 종갓집이 맞을까? 정답은 찌개와 종갓집이다. 내가 국문과를 나왔다는 정체(?)가 탄로 난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은 심심찮게 나에게 맞춤법이나 어려운 낱말, 고사성어 등을 물어온다. 살짝 식은땀을 흘리면서 쉬운 문제가 나오기를 바라지만 때로는 나도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이리하여 헷갈리는 문제들을 공부하다 보니 긴가민가하던 것들도 조금 터득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맞춤법 아는 것이 타고난 능력이 아닐 터이니 이것은 순전히 사람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면서 늘어난 실력이다.
주변에서 이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컴퓨터를 잘 아는 사람에게 컴퓨터에 관련된 질문을 계속하게 되어 그 사람은 점점 더 컴퓨터 전문 지식이 생기고 노래를 잘 하는 사람에게 노래를 계속 시키다 보니 점점 더 노래를 잘 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사람은 잘 한다 잘 한다 하면 자신감도 생기고 그쪽으로 관심이나 노력도 더 기울이게 되어 있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무엇 하나를 잘 한다고 칭찬해 주면 얼굴 표정이 달라진다. 아무리 사소한 것 하나라도 눈여겨보고 칭찬해 주면 자세부터가 달라진다.
우리 한국학교에서는 얼마 전 교내 백일장이 있었다. 교내 백일장 제목 중에 하나는 체육시간이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체육시간에 달리기나 운동하는 것 등을 쓴 반면 한 학생은 미국에 와서 친구가 하나도 없었을 때 체육시간을 통해 친구를 사귀게 된 이야기를 썼다. 나의 꿈이라는 제목도 있었는데 정말 많은 학생들이 틀에 박힌 이야기를 썼다. 아픈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의사나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와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등의 아주 보편적이며 재미없는 이야기들을 썼는데 그에 비해 한 학생은 과학 실험과 요리를 비교하면서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글씨는 엉망이었지만 후한 점수를 준 것은 물론이다. 늘 수업시간에 장난만 치고 목소리는 선생님보다도 더 큰 학생이 쓴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글의 내용을 옮겨본다.
“노래는 아주 다른 면이 있어서 좋다. 어떤 때는 쵸코렛처럼 달고 어떤 때는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어떤 때는 돌처럼 딱딱하다. 나는 그렇게 다른 표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 내가 유명해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노래의 세계에 빠져서 돈, 부도, 박탈... 그런 것들을 다 머리에서 지우고 그냥 오직 편안하고 행복한 음악을 퍼트리고 싶다.”(참고:바로 얼마 전 수업시간에 부도와 박탈이라는 단어를 배웠었다. 활용의 천재!)
이 학생은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엉덩이를 책상에 붙이지 못 하고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며 시를 쓰면 안 되냐고 엄살을 부리던 녀석이다. 시의 깊은 경지를 알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단지 짧게 쓰고 싶은 속내를 익히 아는 터라 집중하고 앉아서 산문을 쓰라고 했더니 머리를 쥐어짜내는 산고의 고통 끝에 이런 옥고가 나왔다. 이 글로 장려상을 탔는데 얼굴에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터질 듯이 배어서는 ‘장려’가 무슨 뜻인지 물어왔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집에 가서 부모님께 엄청 자랑할 것은 분명하고 나중에 자기 자식들한테까지 자랑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반에서 상을 탄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눈에 띄게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아니다. 그래서 솔직하고 기발하게 표현한 것들에 대해 칭찬을 곱빼기로 해 주고 나니 어깨가 뒤로 반 뼘은 젖혀진 것 같다. 이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 앞에서 칭찬을 듣게 된 이번 사건 이후로 글을 쓰는 것에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잘 한다 잘 한다 했으니 그 방향으로 점점 더 크게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반면에 별 생각 없이 한 말에 상처 받고 그 방향으로 점점 더 작게 되는 학생은 없는지 늘 돌아봐야겠다는 반성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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