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서문에서 막스 뮐러는 “우리에게는 누구나 조금 전에만 해도 거기에 앉았다가 이제는 무덤에 누워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이 쓰던 그 책상에 앉아보는 순간, 그리고 이제는 죽음의 성스러운 평화 속에 누워 있는 한 인간의 신비로운 비밀이 여러 해 동안 감추어졌던 방을 열어보는 그런 경험의 순간이 있다” 하였으니 내게는 지난번 여행 때 다녀온 파리 근교의 조용한 시골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서의 경험이 그러하다.
그림으로서 밖에는 그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던 빈센트 반 고흐가 광기의 궤적을 밟다가 출구 없는 고독 속으로 소진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곳은 그가 머물렀던 120년 전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고흐가 하루 3.5프랑의 허름한 다락방 방세를 못내 쩔쩔 매던 라부 하숙집, 무거운 화구를 메고 오래오래 걸어 다녔을 좁은 산길들, 그리고 이제는 죽음으로 굳게 닫힌 그의 눈이 수없이 보았을 까마귀 나는 밀밭, 가슴에 스스로 총을 쏜 후 쓰러질듯 하숙집으로 돌아왔을 뒷산 언덕길, 그의 작품 속 소재가 된 마을회관, 성, 교회……. 고흐가 이젤을 세우고 있었던 같은 자리. 다만 다른 시간 속에 내가 서 있었다.
20대 후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10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드로잉을 포함 2,000여점의 작품을 쏟아내며 자신이 경험한 삶의 쓰라림을 예술 속에 전적으로 투영시킨 화가였던 고흐가 늘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보통의 삶이 거부된 채 오직 그림 속에서 위로받은 그의 개인적 운명과 예술을 통해 한 위대한 영혼의 비극을 극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고, 예술의 진정한 가치가 값의 높낮이로 규정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고흐 작품의 교환가치를 우선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50프랑 정도의 가격에 내 그림이 팔린다면 숨은 좀 돌릴 수 있을 것”(고흐의 편지 중에서)이라고 말했던 당시의 처지를 생각하면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유린해 버린 위대한 예술가에게 뒤늦게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부산을 떠는 듯해 희극적인 느낌까지 든다.
고호가 살았을 당시에는 파리에서 가려면 온종일이 걸렸다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 그 작은 시골 공동묘지 한구석에는 인간에게서 한 줌의 따스함을 그토록 원했던 고흐가 대신 찰랑대며 쏟아져 내리는 햇살의 따스함 속에서 그의 유일한 후원자이며 동반자였던 동생 테오와 함께 묻혀 있다.
인생의 행복이라는 것이 고난을 덜 겪는다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난을 상승적으로 빛나게 극복하는데 있다면, 고통의 깊은 우물 속에서 위대한 예술을 건져 올린 그는 결국 행복한 사람인 것일까? 그곳에 내가 갔었는지조차 꿈을 꾼 듯 아스라한 고흐의 묘지를 떠올릴 때마다 화두처럼 떠나지 않는 이 삶의 비밀을 언제쯤 나는 깨닫게 될지… 아니 깨닫는 순간이 내게 있기나 할 것인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 중에서-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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