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9년 전의 일이다. 세월이 그토록 빨리 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 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아득한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아니, 그것은 옛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나에게도 아득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싫증도 나지않고 끊임없이 반복되어지는 이야기. ‘1950년6월 25일’. 어찌 우리가 그 날을 잊으랴. 잊을 수가 있으랴.
우리가 연건동 집에서 피란을 가기위해서 온가족이 겨우 갔던 곳은 삼각지에 있는 당숙의 집이었다. 한강의 철교가 끊어졌다고 하여서, 결국에는 서울을 탈출하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온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으나, 나는 어렸으니 근심과 걱정은 전부 어른들의 몫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 밑에서 태평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그 때에 우리의 가족중에는 아버지의 막내동생인 나의 삼촌이 있었다. 작은 삼촌은 17살의 학생이었다.
아버지는 그 해의 여름에는 다다미 방 밑에서, 광 속에서, 뒷뜰의 나무 아래에서 죽은듯이 숨어 살았다. 그러므로 문밖으로는 출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우리가 피란을 가려고 하룻밤을 묵었던 당숙과 그 가족들의 소식은 알길이 전혀 없었다. 사촌형이 걱정이 되셨던 아버지는 ‘너는 아직 어리니, 괜챦겠지. 사촌형이 어찌 지내는지 가보고 오너라’라고 하면서 작은 삼촌을 당숙네 집으로 심부름을 보냈다.
그리고 삼촌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에는 전차도 다니지 않았으니, 어머니는 아이들과 숨어계신 아버지를 집에 두고, 걸어서 당숙의 집에 다녀오셨다. 당숙의 집에 도착해보니 당숙모가 아이들 다섯을 옹기종기 데리고 울고 있었는데, 이유는 당숙도 우리집의 소식이 궁금하여서 우리집으로 가셨으나,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이 되어 울고계셨던 것이었다. 삼촌과 당숙은 같은 날에 어디론가 잡혀가신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도 그들의 소식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세월이 지나간 후, 하루는 거제도에 있는 반공포로 석방에 대한 소문이 넓게 퍼지고 포로들의 이름도 신문에 실려있었다. 그 이름들 가운데에는 뜻밖에도 작은 삼촌의 이름과 당숙의 이름이 나와있었다. 우리의 친척들은 모두 기뻐서 흥분이 되었다. 그리고 죽은줄만 알았던 당숙이 먼저, 나중에는 작은 삼촌이 집으로 돌아왔다.
알고보니 삼촌과 당숙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붙잡혔는데, 삼촌의 사촌형이었던 나의 당숙은 헤어지기 전에 삼촌의 손에 몇푼의 돈을 쥐어주었다는데, 그들은 일주일 후에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인민군이 되었다. 그리고 최전선에 배치된 삼촌이 소속되었던 인민군 부대는 서울의 거리에서 붙잡힌 사람들로 구성된 소대였다는 것이었다. 전선에서 국군을 보면무조건 투항하기로 약속한대로 그들은 모두 포로가 되어 거제도의 수용소에 있게 되었다.
사상이 달랐던 인민군포로들이 수용소 안에서 어떻게 서로 대적하였으며, 얼마나 치열하게 대립하였으며, 얼마나 용감하였던가. 우리는 귀를 기우리고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같은 동포 사이에서 일어났던 비극.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눈물겨운 비극인 것을 안다.
삼촌은 그 때에 나이가 어렸음으로 다시 학교에 다니다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또다시 육군에 입대를 하여야만 하였다. 그러나 반공 포로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군대에서도 삼촌이 근무하는 곳은 제한이 되어 있었다. 삼촌은 아마도 어떤 감시의 대상이 되어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무원은 아니고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지는 않고 일생을 평탄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지금 76세인 나의 삼촌은 아직도 건재하시고, 6월이 되면 그 때의 ‘서울, 1950년 여름’을 기억할 것이다. 어찌 그 날을 차마 잊을 것인가. 잊을 수가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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