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시내버스는 검표를 하지 않는다. 대신 버스 안 노란 박스에 표를 넣으면 시간이 찍히는데 이후 75분간만 유효하다. 지난해 로마에서 버스를 타다가 당한 나의 황당한 경험담은 이렇다.
종착 정거장인 테르미니역에 도착했을 때 선글래스를 낀 험상궂은 청년 2명이 앞뒷문으로 올라탄 후 갑자기 검표를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표를 보자고 해 내밀었더니 “왜 검표 스탬프를 안 찍었느냐”면서 벌금을 내라고 했다. 나는 분명히 노란 박스에 티켓을 밀어 넣었는데 거꾸로 들어가 스탬프가 안 찍혔던 모양이다. 그래서 무임승차로 몰린 것이다.
따지기도 귀찮아 벌금을 내기로 하고 얼마냐고 물었더니 자그마치 85유로라는 것이다. 티켓 값의 85배다. 할 수 없이 크레딧카드를 꺼냈다. 그랬더니 캐시를 내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나와 함께 무임승차로 걸린 4명의 이탈리아 여성들은 어디 갔는지 없고 나만 붙잡고 있었다. 검표원이 관광객만 노린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사실 관광객이 버스표를 가지고 있는 한 스탬프를 찍어주며 티켓의 어느 방향으로 밀어 넣어야 작동이 된다는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관광국 이탈리아답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기가 나서 벌금을 못 내겠다고 했다. 그러자 경찰서로 가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귀찮아서 이 단계에서 포기하고 돈을 주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래? 좋아. 경찰서 가서 따지자”고 했더니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테르미니 역내 파출소로 갔다.
검표원과 순경은 뭐라고 쑥덕쑥덕 하더니 나를 앉혀놓고 물어보지를 않는다. 골탕 먹이기 작전이었다. 나는 참다못해 파출소 소장에게 다가가 “내가 크레딧카드로 벌금을 내겠다고 했는데 뭐가 잘못 되었느냐”고 따졌더니 농담 섞인 어조로 벌금을 안내면 경찰서에서 하루 자야 하는 것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도 웃으며 호텔 값 절약 되겠지만 내일 새벽 시실리로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자는 것은 곤란하다고 대답했다.
이때 파출소장의 얼굴표정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내가 시실리언인데 시실리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 팔레르모가 목적지라고 하자 시실리는 레몬으로 유명하고 음식 맛이 뛰어나다고 하면서 팔레르모의 식당을 소개하는 등 지나칠 정도로 친절을 베풀었다. 이어 다른 순경을 시켜 문제의 검표원을 불러오더니 나에게 사과하라며 꾸짖었다.
캄파닐리스모(campanilismo) - 이탈리언의 그 유명한 내 고장 사랑이다. 이탈리언은 어디 가서나 “나는 이탈리언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베네치안, 시실리언입니다” 등 출신지역을 앞세운다. 이탈리아의 축구열기가 지나친 것도 이들의 고향 집착증 때문이다. 음식, 와인,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지방마다 다르다. 파바로티가 고향인 모데나의 와인 람브르스코와 음식을 해외여행 때 갖고 다닌 것만으로도 이들의 애향 집착증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고향 사랑이 지나친 나머지 이탈리아에는 남북차별이 심하다. 비교적 경제형편이 나은 북쪽 사람(로마 이북)들은 나폴리, 시실리 등 남쪽 사람들을 굉장히 괄시해 남북의 젊은이가 결혼하는 것을 집안에서 결사반대한다. 이같은 남북의 차별대우를 메리디오날리(meridionali)라고 하는데 이 지역감정이 이탈리아의 발전에 결정적인 마이너스 요소가 되어있다. 밀라노 출신의 베를루스코니가 총리가 된 것도 남북인의 감정대립에서 완충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캄파닐리스모와 메리디오날리 - 이 두 개의 감정은 이탈리아의 추진력이면서 동시에 이탈리아가 뻗어나가지 못하는 장애물이다.
이철 고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