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년 만의 새음반 ‘그땐 몰랐던 일들’ 발표
폭우가 쏟아지던 날 만난 윤상(41)은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을 막 마치고 왔다고 했다. 비를 툭툭 털며 오랜만에 방송하려니 다소 어색하다고 뿔테 안경 너머로 보여주는 미소는 1990년대 여심을 사로잡은 그때 그것이다.
미국 버클리음대를 거쳐 뉴욕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윤상은 지난해 12월 후배들이 자신의 노래를 편곡해 부른 스페셜음반 ‘송 북(Song Book)’을 내고 단독 공연을 통해 활동 ‘워밍업’을 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며 정규 음반 발표를 약속했고, 2003년 이후 6년 만에 6집 ‘그땐 몰랐던 일들’을 최근 발표했다. 그 약속을 지키고자 지난달 입국한 그는 얼마 전 태어난 둘째 아들 얼굴도 보지 못했다. 아내가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데 빨리 보고싶다는 말 한마디에 미안함이 묻어난다.
6집은 유학의 산물인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1990년대 1, 2집에서 들려준 서정적인 멜로디와 노랫말이 신선한 동거를 한다. 과거와 현재 윤상의 절충점을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사실 더 실험적일 수 있었어요. 대중이 ‘뭘 배웠는지 보자’고 할까봐 자격지심이 있었죠. 하지만 KBS 1TV 다큐멘터리 ‘누들 로드’ 음악작업과 일렉트로니카 그룹 ‘모텟(mo:tet)’ 음반을 마치고 나니 강박관념을 털어낼 수 있었어요. 또 과거 팬들에게 제가 지금 지향하는 음악을 강요하는 것은 대중음악가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럼에도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도드라진 건 여러 이유가 있다. 집에서 홀로 곡 작업을 했고, 시간 상 학생의 입장에서 수많은 악기 연주자를 불러 녹음할 여건이 안됐다. 또 5집 때도 ‘윤상은 진보하다. 가만히 머물러있지 않다’는 평을 들었기에 정체된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덕택에 윤상이 앞으로 나아갈 음악에 대한 밑그림은 더욱 또렷해졌다.
사실 사운드의 성향보다 고민이 된 건 6집이 자신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였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면 그것이 바로 위기이기 때문이다. 팔리고 안 팔리고를 떠나 다음이 막연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한 톤 죽인 그의 실험정신과 과거 노선을 살린 음악들은 자극적인 소리로 ‘떡칠’한 요즘 노래들과 달라 도드라진다. 일렉트로닉 팝이라고 굳이 정의한 그의 음악들은 한번에 꽂히는 ‘후크송(Hook Song)’은 아니지만 되새김질할수록 맛이 우러난다.
타이틀곡 ‘그 눈 속엔 내가’를 비롯해 ‘소심한 물고기들’, ‘영원속에’ 등 수록곡들은 그의 소박한 목소리와 ‘촌스러운’ 노래 가사가 어우러져 편안하다. ‘그땐 몰랐던 일들’은 윤상이 부른 버전과 연주곡에 허밍 버전, 윤상의 6살된 아들과 3집부터 함께 작업한 콤비 작사가 박창학의 두딸이 부른 버전 등 세가지 형태로 실었다.
그는 박창학 씨를 몰랐다면 과연 내가 지금까지도 노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는 가수에 대한 욕심,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로서의 역할 등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다. 나와 박창학 씨는 직접적인 표현에 서툰 사람들이어서 노랫말이 좀 촌스러울지도 모르겠다고 웃었다.
그는 앞으로 공연 무대를 통해 팬들과 호흡하고 싶어한다. 최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그의 공연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저는 무대 자체를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겸손이 아니라 순수한 고백이죠. 젊었을 때는 음반으로 평가받고 싶은 레코딩 뮤지션의 마인드가 강했다면, 이제 무대에서 제 음악으로 호흡하고 싶어하는 팬들의 기분도 헤아리게 됐어요. 소심하게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는 무대로 다가가고 싶어요.
그는 8월 말까지 국내에 머문다. 20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신인 감독들을 대상으로 ‘일렉트로니카를 통한 SF영화의 미래’를 주제로 얘기한다. 앙코르 공연도 할 것이고, 8월 초에는 ‘누들 로드’ O.S.T도 발매된다.
그는 ‘뮤직 테크놀로지’ 전공 마지막 학기라며 박사는 포기할 계획이다. 음악 공학은 내가 흥미를 가질 분야가 아니다. 올 연말까지 논문을 통과한 뒤 국내에 들어올 생각이다. 1년에 한장의 음반은 무리겠지만 또 6년이 걸리진 않을 것이라고 다시 약속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