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나고야 인근의 이세신궁에 다녀왔다. 일본 개국 신화와 관련한 퍼즐을 맞춰 보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는 일본도 한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로 이주해 발전한 이민 국가의 하나일 것이라는 가설이다. 현지의 수월한 교통편 연결은 인상적이었다. 반면 주변 설비들은 상당히 낡았다.
“일본이 개발도상국이 됐네.” 10여 년 전 도쿄의 국제금융 기구에서 장기간 근무했던 친구의 첫 마디다. 일본 개발도상국론은 경제는 선진국이지만 사회시스템이 개발도상국형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에서 출발했다. 이제는 경제 분야도 개발도상국 특징이 보인다는 의미다. 과연 정말 일본이 개도국일까.
일본은 엄청난 변혁기에 있다. 가장 핵심은 트레이드 마크였던 경제력의 약화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 대국의 지위를 2010년 중국에 넘겨줬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한때 5만 달러대에 육박하다 지금은 3만 달러대로 추락했다. 우리는 물론 대만의 우상이었던 국가가 이제는 수준이 같아져 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모습이다.
환상도 많이 깨졌다. 과거에는 잘사는 선진국임에도 지나친 일본화로 폐쇄돼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관광 입국을 기치로 관광이 내수 확대의 큰 영역이 됐다. 지하철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일본어·영어 안내 방송에 이어 중국어·한국어 방송이 병행된다. 실제로 승객 중 상당수가 외국인이다. 오사카를 다녀온 지인은 관광객 10명 중 7명이 한국인이라고 전했다. 대만·중국·서구인의 비율이 각각 10% 정도라고 가늠했다. 개도국이 도약 단계에서 외환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광을 최우선시하는 경향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놀랍게도 식당 종업원 상당수도 외국인이고 제공하는 음식량이 훨씬 많아졌다. 도심 일부 지역에서 노숙자도 간간이 보인다. 예전에는 볼 수 없던 진풍경이다. 한편 대졸 취업 시장은 구인난을 겪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현상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을 개도국으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경제중심주의 관점이다. 일본의 경제력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종합적으로는 아직 선진국이다.
부러운 것은 전국 어디를 가나, 특히 농촌 지역이 편차 없이 잘 살고 있다는 점이다. 주거 환경도 아주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다. 주위를 깨끗이 하고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범국민적 노력의 결과이다. 국민 의식이 그만큼 선진화돼 있기 때문이다. 귀향 지도자가 고향을 특징 있게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쉽게 볼 수 있다. 이게 꼭 경제발전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고유의 장점으로 정착, 전 세계에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발전의 척도로 놓칠 수 없는 요소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한 세대를 지나 40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섬나라라는 한계가 있는 자국 영토 내에서 동원 가능한 역량을 쥐어짜면서 성장해왔다. 그러다가 대전환·대변혁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되면 혜성처럼 나타난 지도자를 중심으로 국민들이 뭉쳐서 이를 일궈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서구를 재빨리 모방해 한 단계 도약한 경험도 있다.
한때 세계적인 선진국에서 지금은 이를 연장하기 위한 재구축에 골몰하고 있다.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의 개념화를 나름대로 시도하고 있다. 자민당 일당 우위 정치 체제, 대기업 위주의 낮은 생산성, 남녀 격차가 선명한 노동시장 등이 조금씩 개선될 조짐도 보인다. 방향성이 중요하다. 우리가 일본을 우습게만 볼 게 아니라 더욱 철저히 배워야 할 점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개선될 기미가 안 보여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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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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