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갑자기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급박한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상황의 전개가 완전히 뒤바뀌기는 일들이 천연덕스럽게 일어나기도 했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뿐만 아니라 권위는 커녕 자신의 존재가 누구에겐가 알려질 것을 염려하고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문밖의 출입은 너무나도 위험하였다. 어처구니없는 아버지의 숨어살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숨어지내시던 아버지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시기도 하였다.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의 입구에 있는 동사무소 건물이 공산당들의 내무서로 바뀌어졌었는데, 내무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학교에 나가지 말아라”라고 나에게 말하였다. 우리 형제들이 학교를 결석한다는 일은 어림없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가기로 하였다. 학교란 아이들이 당연히 다녀야만 하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들이 말한 학교란 커다란 창고였는데, 여러 학교에서 온 아이들을 나이와는 상관없이 같은 방에 모아놓고 북한의 혁명을 찬양하는 노래를 하루 종일 가르쳤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말했다. “미국놈들이 폭격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숨어서라도 공부를 해야합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물어보신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느냐?” “노래를 배웠습니다.” “공부는 안하고 노래만 했다고?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말라고 하였는데 갔다왔다는 말이지? 다음부터는 절대로 나가면 안된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예” 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나는 석달 동안 학교에는 가지않고 길에서 과일을 팔았다.
9월의 중순도 지난 어느 날 내무서에서 사람이 왔다. 우리집에서 방을 하나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건동에 있던 우리집은 그 당시 그 근방에서는 제일 좋은 집이었을 것이다. 내무서에서 접수하였던 것은 우리가 큰방이라고 부르는 제일 좋고 넓은 방이었다. 우리는 큰방 근처에는 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방은 현관의 바로 옆에 있었으므로 나는 밖으로 나가면서 열려있던 방안을 힐끔거렸다. 지위가 높은 사람인 듯 한 인민군 한 사람이 누워있었는데, 다리를 다친 것 같았다. 많이 아파하지는 않았으나 다친 사람이 병원에 가지않고 우리집에 있다는 것이 이상하였다. 특별한 사람이어서 특별한 대접을 받고있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안절부절 하면서 걱정이 태산같았다. 같은 집에서 이쪽에는 아버지가 숨어있고 저쪽에는 인민군 장교가 숨어 있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틈바귀에서 어머니의 불안한 마음은 당연하였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더 안전할런지도 몰라. 밤에 점검을 나오는 일은 아마 없을거야.” 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공산당원들이 한밤중에 대문을 두드리고 들어와서 집에 숨어있는 남자들을 잡아가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3일이 지난 후, 소리도 없이 어느 사이엔가 큰방은 덩그러니 비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방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않았다. 인사도 없이 몰래 북쪽으로 가버린 그 사람은 그 시간에 집주인도 같은 집에 숨어있었다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아버지도 들킬가봐 겁이났으며, 그 남자도 들킬가봐 걱정하다가 우리집을 몰래 빠져나간 것이었다.
전쟁은 여러 사람을 비탄에 빠지게 하고 불행하게 하고, 모든 자존심과 긍지를 버리게 하면서도 삶에 대한 엄청난 의지와 인간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계의 여러 곳에서는 우리가 겪었던 비슷한 일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비극은 도대체 언제나 끝이 나려는 것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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