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집에서 치대느라 바쁘고 지치기도 하는 기나긴 여름방학도 어느새 그럭저럭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아이들 방학 때면, 집안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주부의 일상으로 부터 벗어나서 나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한번쯤 들고는 한다.
그래서일까, 여름만 되면 가끔씩 어느 한적한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혼자 조용히 외로움 속에 나 자신을 며칠이고 내버려 두는 꿈을 꾸고는 한다. 최소한의 먹거리만 해결하면서 게으르게 하루 종일 바닷가를 어슬렁거리고, 차가운 바닷바람을 쐬면서 들꽃들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해변 언덕을 헤매다 돌아오고 싶어진다.
그렇게 집을 떠나 떠돌고 싶은 ‘집시병’이 도지는 여름이면, 나는 친한 친구들 가족과 몇번의 캠핑을 계획하여 다녀오고는 한다. 아이들이 딸려 있으니 하루라도 밖에서 야영을 하려면 챙겨야 할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야외에서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고, 텐트와 침낭, 옷과 비상약등, 짐을 한바탕 싸서 떠났다가 돌아와 짐들을 다시 정리하다보면, 이제는 쉽게 어디론가 훌쩍 떠나지 못하는 나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필요한 짐을 꾸릴 때면 바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로 떠난다는 즐거움에 나는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보따리를 싼다.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호숫가의 새벽과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에서의 아침,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바닷가의 밤들이 참 좋다. 해가 기울고 어스름해지면, 달구어진 석탄불에 갈비와 돼지 삼겹살을 굽고 냄비에 밥을 하면서 저녁을 준비한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 앉아 옥수수와 고구마, 머쉬멜로우를 구워 먹으며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재잘거리고, 어른들도 이야기 꽃을 피우며 밤 하늘의 별들을 헤아리다보면 여름밤은 깊어가는 줄 모른다. 싸늘하게 차가운 아침 공기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 나무들이 가득 들어선 숲 속에서 마시는 뜨거운 커피 한 잔도 잊을 수 없는 캠핑의 재미이다.
어쩌다가 비라도 내리는 밤을 만나면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귓가에 윙윙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고는 하는데, 그런 밤이면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과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따뜻한 나의 집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집 없이 밤을 보내며 세상을 떠도는, 자유롭고도 서글픈 집시가 된 듯한 느낌이 들고는 한다. 그렇게 집에 있을 때는 길 위의 삶을 꿈꾸고, 길 위에서는 집을 그리워하며 며칠 고생을 하다가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나의 떠돌이병은 조금 가라 앉고는 한다.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친구들과 소노마 카운티 해변에 있는 Mendocino에 자주 다녀온다. 북가주 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Russian River의 한 줄기인Big River라는 이름의 예쁜 초록빛 강물이 태평양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작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 나온다.
그래서일까,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여름날이면, 나는 늘 그 곳이 그리워지고는 한다. 이루마의’River flows in you’ 와 앙드레 가뇽의 ‘Un Piano sur la Mer (바다위의 피아노)’, 내가 좋아하는 이 두 곡들은 초록 강물과 푸른 바다가 만나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많이 부는 아름다운 그 곳의 하얀 모래밭 위로 나를 데려다준다. 찰랑거리며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던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과 철썩이는 바다의 파도들은 피아노가 내는 소리들을 닮아 있다.
집에서 틈틈히 꺼내 읽는 순수한 시들과 피아노 앞에서 잠시 나는 일상들을 잊어본다. 음악과 시들은 현실 속에서 늘 머나먼 곳으로 떠도는 꿈을 꾸는 나에게 달콤한 위안을 주고, 나는 여름날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을 떠올리며 혼자 행복해하고는 한다. 길을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 오면서…… 그렇게 여름은 짙게 무르 익어간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