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렇게 허무하게 갈지 몰랐어요. 형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지난 4일 세상과 작별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와 함께 대한해협을 건넜던 차동석(54·LA)씨는 인터넷으로 조씨의 죽음을 접하고는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대전 출신인 차씨는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조씨를 처음 만났고 이때부터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냈다.
주 종목이 각각 평영과 자유형으로 달랐던 두 사람은 지방 출신의 촌놈이라는 공통점까지 더해져 금방 친해졌다.
두 사람의 인연은 선수생활이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1980년 있은 조씨의 대한해협 횡단에 차씨가 매니저 및 트레이너로 참여하게 된 것. “형이 저보고 트레이너를 맡아달라고 했어요. 4년이나 후배인 저에게, 트레이너는 선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이유로 맡기는 거 보면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참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지요.”
이후 차씨와 조씨는 몇 개월 동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체력훈련에 몰두했다. 스폰서를 구해 오는 것도 차씨의 몫이었다. 보호막 위에서 음식을 건네주고 조류의 흐름을 알려준 것도 차씨가 맡아서 했다. 2시간에 한번씩 식사할 수 있도록 죽도 만들었다. 아기 젖병처럼 만들어 물속에서 그대로 빨아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대한해협에 청상어가 많이 출몰하기 때문에 쇠로 만든 철조망은 필수였다. 철조망을 끌기 위해서는 고기잡이배가 동원됐다.
차씨는 조씨의 죽음이 전해진 다음날, 이미 저승으로 떠나버린 조씨를 향해 배달되지 않는 편지는 작성했다. “…해남에서 올라온 촌놈이라서 ‘남이 웃을 때 당신은 생각해야 했고 남이 걸을 때 당신은 뛰어야 했던’ 인고의 세월을 살아갔던 형님을 이제는 보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조씨는 “체육훈장을 4개나 받은 형의 장례가 가족장으로 치러지는 것이 안타깝다”며 “체육인 전체가 힘을 합쳐 형의 업적을 기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차씨는 수영 후배 박태환 선수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운 거잖아요. 마치 연예인이나 된 것처럼 TV에 출연하고 CF 찍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몇 년 동안은 운동에만 전념해야 돼요. 마이클 펠프스나 1,500미터 자유형에서 금메달 딴 멜루니처럼 말이에요.”
<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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