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파란만장한 일생을 뒤로 하고 18일 서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석 달 만에 다시 전직 대통령을 잃은 한국민들의 비통함은 물론,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각별했던 미주 한인들의 상실감 또한 깊고 크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빛과 어둠을 한 몸으로 받아내고 이끌어온 거목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려있는 것은 지난 반백년 한국이 관통해온 소용돌이가 그만큼 격렬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론 미주한인 사회에서도 각자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숭배되기도 하고,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던 독재의 서슬 앞에서 그가 입을 열었고 캄캄한 절망의 시대에 그가 희망의 등불이 되었으며 독재로 치닫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민주화로 돌리는 데 그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업적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이다. 민주화와 남북교류다. 오늘 한국사회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항거가 있었다. 그 지도자로서 김 전 대통령은 6년의 감옥 생활과 10년의 연금 생활, 바다에서 수장당할 위기, 그리고 사형선고까지 경험했다. 어떤 혹독한 시련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그의 불굴의 정신, 그 끈질긴 인동초의 삶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귀감이다.
남북교류는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자 한민족이 계속 풀어나가야 할 당면과제이다. 반백년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의 얼음장을 그는 ‘햇볕’으로 녹여냈다. 북한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해야 남북문제에 물꼬가 트인다고 본 그는 평양으로 날아가 분단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화해의 시대를 열었다. 남한 사람들이 금강산 관광을 하고 개성 공단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남한 기업에서 일을 하며 많게는 연간 20만명이 북한을 왕래하는 일들은 김 전 대통령시대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남북 관계에 새 지평을 연 공로로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 한국 역사에 또 하나의 영예를 선사했다.
남북관계는 지난 10년 사이 가장 경직되어 있다. 북한의 연이은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남과 북은 물론 미국과 북한 관계도 더 할 수 없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다행히 최근 양측 관계에 숨통이 트이는 계기들이 있었지만 상호신뢰의 기반이 마련되려면 아직 멀었다. 이런 경색국면을 풀어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그가 떠났다는 사실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찬반으로 미주한인사회도 오랜 세월 갈등을 겪었다. 그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은 서로 대화도 통하지 못할 만큼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가 숱하다. 그가 떠난 지금 우리는 숙연한 자세로 그가 남긴 가장 귀한 유산을 이어받아야 하겠다. 대결보다는 화해, 반목보다는 협력의 정신이다. 남북교류는 근본적으로 화해의 정신의 산물이다. 그가 피해자이자 그 중심에 있었던 지역감정 역시 그의 서거를 계기로 넘어서야 하겠다. 그래서 남남, 남북, 그리고 미주 한인사회가 다시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