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지도자가 사망한다. 국장 일정이 논의되고 이어 장례위원의 명단이 공개된다. 각 정부들은 그 명단에 먼저 주목한다. 권력의 향방을 어느 정도 가능케 해서다.
철의 장막으로 가려진 과거 소련시절 크렘린에서 무슨 일이 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방정부들이 의존하던 방법이었다. 장례위원 서열은 권력의 서열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조문사절을 보내 상황을 점검했었다.
1976년 9월9일 모택동이 사망했다. 현직 대통령이었던 포드는 물론 미국과 중국 두 나라 국교 정상화의 물꼬를 텄던 닉슨 전 대통령도 조문사절로 북경을 찾았다.
당시 중국과 일촉즉발의 관계였던 대만정부 역시 사절단을 보내는 한편 모택동 이후 중국 내 지도부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감지했다. 조문외교가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이 조문외교는 고대에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고도의 외교 수단으로 활용됐다. 그 스토리의 하나가 중국의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강동의 손권과 형주의 유표는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였다. 그런 정황에서 유표가 사망하자 강동의 손권은 조문사절단을 보낸다.
손권은 형주를 병탄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목적을 위해 ‘아버지의 원수’라는 사적인 원한은 뒤로 하고 형주의 허실(虛失)을 탐지하기 위해 조문사절단을 보낸 것이다.
김기남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대남문제 실세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주축으로 6명의 조문단이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한 뒤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남북정상회담 제의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여러 갈레의 설(設) 중 꽤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추측은 북한은 돈이 꽤 급해 조문사절단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또 하나, 아마도 지난 달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방문 시 전한 오바마 메시지가 먹혀들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의 이 돌연한 유화 제스처는 다른 게 아니라는 거다. 어차피 미국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유화 제스처를 쓰는 마당에 한국으로부터 돈이나 챙기자는 복선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일부에서 나오는 관측은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는 식량원조 재개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추측 게임은 그렇다고 치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북한에서 국상(國喪) 났을 때 한국정부는 과감하게 조문사절을 보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건강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5년 내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신들의 보도다. 그리고 그 나라의 체제가 폐쇄적일 수록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게 조문외교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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