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이야기다. 어느 미국 대학에 한국인 수학 교수가 한분 있었다. 마침 학장 자리가 공석이라 이 교수는 자신이 최고참이니까 학장으로 승진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학교는 그를 학장 후보 심사위원장으로 임명해서 학장으로의 승진을 막았다. 몇년 후, 다시 학장 자리가 공석이라 “이번에야말로…”라며 기대하고 있는데 다시 후보 심사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결국 그 교수는 사표를 내고 말았다.
지난 2005년 12월, 샌프란시스코 지역 한인교회연합회가 대상에 한국 왕복 항공권 한장을 걸고, ‘도시와 십자가’라는 주제의 사진 공모전을 열었다. 항공권에 대한 기대가 한창일 즈음, 심사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당시 교회연합회장 목사님의 전화 요청에 항공권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다. 아무런 컨테스트 규정도 없이 시작한 대회였다. 세 분의 목사님들과 함께 무언의 심사를 한 후, 대상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그 대상 수상작에는 십자가가 없었다. 곧 십자가가 없는데 어떻게 대상으로 선정되었는지 항의가 들어왔었다.
옛날 과거시험에도 주제가 주어지면, 응시자들은그 주제를 어떤 각도로 접근할 지 심사 숙고한 후 써내려갔었다. 그러나 이 출품 사진들은 주제에 대해 노력하는 작품들이 아니라 그저 도시와 십자가를 끼어맞춰 사진의 예술성보다는 항공권만 추구하는 작품들이었다. 그 대상 수상작은 한 홈리스 걸인이 동냥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God Bless You..)’라고 쓴 종이를 구걸 깡통 옆에 둔 흑백사진이었다. 심사위원장으로서의 느낌은 오늘날 십자가가 목걸이 등의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마당에, ‘하나님’이라는 단어마저 남용, 오용되고 있음을 고발하는 사진이었다. 배고픈 한 도시 무숙자의 강박한 삶 속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라도 써서 한푼이라도 더 동냥해볼까하는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진이었다.
컨테스트에는 자신의 작품이 다른 사람과 확연히 구분되는 작품이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토리 키재기 컨테스트가 된다. 어느 초등학교 작문 시간에, 선생님은 야구에 대해서 작문하라고 했다. 모두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며, 올 스타 게임, 월드 시리즈 등 뉴스에 자주 나오는, 그러므로 흥미없는 이야기들을 쓰고 있었는데, 한 소년은 바깥 창문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지막 순간 급히. ‘우천, 게임 없음(Rainy. No game.)’이라고 썼다. 이러한 작품이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 이듬해인 2006년, 제2회 사진 컨테스트에서는 이메일을 통해 익명으로 응모하도록 했다. 이번에는 사진 속의 인물에 대한 초상권이 없으면, 수상이 취소된다는 규정도 넣었다. 그래서 응모작 중에서 수상작들을 정하고, 초상권이 있느냐는 이메일을 각 수상 예정자들에게 보냈었다. 항공권 한장에 목메달고 초상권 없어도 된다는 정당성을 주장하는 답을 몇통 받고는, 이래도 저래도 좋은 소리 못듣는 것이 심사위원장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베이 지역의 리치몬드 침례교회가 대상 500불을 걸고 사진 컨테스트를 연다. 다행히 준비가 순조롭다. 그런데, 이번에도 심사위원장에 앉게 되었다. 대상을 탈 수 있는 희망은 다시 사라졌어도, 이번 만은 잡음없는 우리 한인들의 축제가 되기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응모하고 우리들의 뭉친 힘이 외부로 보여지면, 니콘이나 캐논 등이 한인 사회에도 접근한다. 이 경우, 그들은 한인신문 등에 광고도 내고, 우리 한인들의 사진 관련 행사에도 나타나 여러 도움을 준다. 이것이 정치력이고, 우리들이 주류사회에서 뭉쳐야하는 이유다.
심사위원장이라고? 글쎄, 직함은 그럴 듯한데, 잘해야 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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