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옛날 옛적의 노래가 되었다. 최희준씨의 “엄처 시하”라는 유행가가 있었는데, 김 석야씨가 붙인 가사는 이렇다. 열아홉 처녀 때는 수줍던 그 아내가/첫 아이 낳더니만 고양이로 변했네/눈 밑에 잔주름이 늘어 가니까/무서운 호랑이로 변해 버렸네/그러나 두고보자 나도 남자다/언젠가 내 손으로 휘어잡겠다/큰 소릴 쳐보지만 나는 공처가. 이 가사는 아내의 변천사를 코믹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지난 봄부터 한국의 어느 곳에서 책을 출판하니까 국문 영역 및 영문 국역을 부탁해왔다. 처음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었는데, 조금씩 부탁이 늘어가는게 고구마 줄기가 끝없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유월의 어느날, 난데없이 가만히 있던 아내가 다른 일로 십자 포화를 퍼붓는다.
성경의 마태 복음 27장 39-40절을 보면 군중들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야유하는 장면이 있다. 항상 이 부분을 읽을 때면, “만약 그리스도가 화를 내며 십자가에서 뛰어내렸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곤한다.
그런데 이날따라 그동안 추측만했던 화난 그리스도의 얼굴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 평상시에는 누구나 경건한 기독교인 것 같지만, 이권이 개입된다든지 화났을 때, 아니면 고난을 겪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참 신앙 태도를 보게된다. 아내가 돌변한 것이다. 나 자신도 반격을 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너무나도 나의 겉과 속을 꿰뚫고 있는 적군이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이었다. 인간은 세 치의 혀라는 잠재적인 흉기를 소지하고 산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 후로 잠을 설치고, 이런 저런 일까지 겹쳐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7월 어느 토요일 아침, 의식 불명으로 한시간 가량 (가족 추측) 황천을 갔다왔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에야 비로소 아내가 병원의 응급실로 데리고 갔었다. 의사가 이런 저것 급한대로 진료하더니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가도록 했다. 신경 외과 전문의는 나이가 많은 인도 의사였는데, “오바마가 지금 어디 있느냐?” “100에서 일곱씩 계속 빼보라.”는 등의 질문으로 정신이 나갔는지 확인하려고 했었다. 그 후, MRI, EEG, 울트라 사운드 등의 각종 검사가 한달가량 진행되었다.
다시 그 의사를 보러 갔을 때에는 간호사가 얼빠진 사람으로 취급하는지, 여기서 혈압재면서, “괜찮으냐” 하고 묻고, 저기서 몸무게 재면서 같은 질문을, 진료실로 들어 오라면서 또 같은 질문을 했다. 정말 사람 하나 미치게 하는 것은 식은 죽먹는 것과 같았다. 의사가 진료실로 들어와서는 검사 결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 잠을 충분히 자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아내가 스트레스의 원천이라고 했더니, “내가 네 형뻘되는 사람으로 이야기 하겠는데, 나는 이년 전에 아내를 잃었다. 서로 양보하며 참고 사는 게, 한쪽이 없는 것보다 낫지 않겠나? 인생은 너무나도 짧다”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 의사를 위로하고 병실을 나섰다.
옛날 나이드신 할머니 한분이 오랜 남편의 병간호에 지쳐서, 계속 짜증만 내시다가 남편과의 사별 후에는 “너무 외롭다. 아파도 좋으니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고 탄식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식들은 자기 짝 맞춰 놓으면, 부모 재산이나 탐낸다. 하지만, 적이 있으므로 오늘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 적이 없어지기라도 한다면?
아내에게 “만약 내가 먼저 죽으면 제일 먼저 무슨 일부터 할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한국 일보 독자들에게 이 칼럼이 더이상 안나온다고 알리는 일이란다. 오늘도 이 적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생각에, 같은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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