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숲속의 가을은 9월 초부터 시작된다. 벌레 먹은 나뭇잎들, 지난 계절 동안 자양분과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나뭇잎들이 계절의 변화를 가장먼저 알려온다.
“인생은 숲속에 난 길”이라고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커가 말 했던가? 숲속에 난 가을 산길은 따사로운 초가을 햇살로 평온하기만 하다. 그러나 숲속은 항상 평온 했던 것만은 아니다.
며칠 전에 스쳐간 폭풍우로 수많은 거목들이 넘어지고, 하늘을 닮았던 강물이 온통 황토빛으로 변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숲속은 태풍의 눈 같은 평온을 다시 되찾고, 연기(緣起) 와 相生의 삶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끊임없는 변화와 사멸의 업보를 계속해 나간다.
숲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죽음들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봄부터 자양분으로 만들어진 당분과 염록소들이 빨갛고 노랗게 스스로 자신을 해체해서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준비해 나간다.
숲속 한 구석에서 산새들이 모여서 구수회의를 했다. “이 힘든 생존경재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난 새일수록 굶지 않는다”고 굳게 결의를 다집했다.
숲속 다른 한 구석에서는 벌레들이 모여서 비상 대책회의를 했다. “이 살벌한 세상에서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될수록 늦은 시간까지 늦잠을 자는 것이다” 하면서 비장한 각오를 했다.
이것이 하나님 창조의 지문들이 숨 쉬고 있는 숲속의 삶들 입니다. 그들은 전혀 공평한 것 같지 않는 창조의 법칙에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인간들처럼 완성에 대한 열망도, 또한 꿈에 대한 도전도 없다. 행복은 “길 자체” 라고 한 드수자의 말처럼 숲속 삶에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 따로 없다. 숲 자체가 그들의 삶이며, 행복이다.
인간들의 숲속에도 緣起와 相生의 아름다운 일화가 종종 있다. 일명 인도의 사도 바울로 알려진 성자 산다싱의 삶에 대한 이런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선다싱은 인도 북부에서 힌두교 한 종파인 시크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시크교 전통 속에서 성장했다. 그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세운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서구인들이 전파한 기독교에 대한 심한 불신과 반발로 기독교인들에게 박해를 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청년이 되어가면서 시크교에 대한 회의와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루는 기독교가 전하는 신이 정말로 살아 있는 신이라면 “나에게 내일 새벽까지 그 살아 있는 증거를 보여달라, 그렇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지나가는 기차에 몸을 던져서 죽어버리겠다” 라고 신에게 선전 포고를 하고 자살을 계획했다.
그가 새벽까지 나타나지 않은 신에게 실망하여 자살을 감행하려는 순간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 흘렸던 흔적이 역역한 예수를 직접 만나게 된다. 그후 그는 40세에 티벳트 전도 여행 중에 실종 될 때까지 예수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서 맨발로 히말라야 산을 수백 번씩 오르내리면서 예수전도로 일생을 마쳤다.
“죽으면 살리라”는 緣起와 相生의 창조질서를 깨달은 선다싱은 “기도의 본질은 뭔가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끊임없이 포기하는 것이다”라는 고백을 하면서 이 땅에서 사라져 갔다.
“진정한 행복 또한 끊임없이 요구하고 바라는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버리고 포기하는 삶”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빌 박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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