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여진 사기극에 미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농락당하는 사례가 연이어 발생, 속보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언론사들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미국의 CNBC는 19일 낮(동부시간) 미 상공회의소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탄소배출 규제를 골자로 한 법안에 반대해온 그간의 입장을 철회키로 했다고 긴급뉴스로 보도했으며 곧이어 유력 통신사가 뒤따라 이 소식을 타전하고 폭스TV도 생방송 뉴스 도중 이를 긴급뉴스로 취급했다.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 상공회의소는 기후변화 관련 법안에 완강하게 반대해왔다. 이 단체가 입장을 바꿔 이 법안에 더 이상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면 이는 간단히 볼 뉴스가 아니기 때문에 미 주요 언론들이 비중있게 취급한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신문사들도 자체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 뉴스를 속보로 다뤘을 정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뉴스는 완전히 오보인 것으로 드러나 이를 취급했던 언론사들이 정정 보도를 내느라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소동의 전말은 이렇다.
`예스맨(Yes Men)’이라는 진보주의 단체가 상공회의소를 그대로 흉내낸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고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이메일로 보낸데 이어 이날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기후변화 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철회한다고 발표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기자회견장에는 미 상공회의소의 톰 도나휴 회장 명의의 성명서가 배포되고 상공회의소 대변인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직접 브리핑을 한데다 `헤럴드 트리뷴’과 `엑스프레스 뉴스’ 소속이라고 주장하는 가짜 기자들도 참석해 질문을 했으니 각 언론사들이 완전히 속아넘어갈 법도 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진짜 상공회의소 간부들이 기자회견 현장에 달려와 이벤트를 연출한 `예스맨’ 소속 사람들의 정체를 폭로하면서 사기극은 20여분만에 막을 내렸다.
워싱턴포스트는 20일 오보의 경위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긴급뉴스(breaking news)’ 경쟁속에 `뉴스가 망가졌다(the news is broken)’이라며 해명성 기사를 실었다.
이에 앞서 14일에는 콜로라도에서 6살난 소년이 올라탄 것으로 보이는 열기구가 2시간 동안 하늘을 떠다니는 동안 CNN 등 주요 방송이 정규프로그램을 중단한 채 기구의 모습을 근접촬영해 실황중계하는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이 소동은 소년의 부모가 언론을 타 보려는 공명심에서 의도적으로 연출한 이벤트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열기구의 비행을 실황중계한 방송사들을 머슥하게 만들었다.
9.11테러 8주년이 된 지난달 11일에는 각 방송사들이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인근의 포토맥 강에서 테러공격용으로 의심되는 정체불명의 선박을 향해 해안경비대가 발포했다며 긴급뉴스로 보도, 워싱턴 지역 주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으나 실제로는 해안경비대의 훈련을 실제상황으로 오인한데서 비롯된 소동이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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