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리스본을 떠나 육로로 남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입성했습니다. 첫 기착지 세비야(Sevilla)는 이슬람과 기독교 양대 세력의 갈등과 서로에게 끼친 영향이 두드러진 역사의 도시입니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은 신비로운 고도입니다. 형도 잘 알다시피, 스페인의 이미지 - 뜨거운 태양과 플라멩고, 투우가 보여주는 치열한 정열의 본산지, 안달루시아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특히 세비야에 끌리는 건 수 백년간 피비린내 나는 전쟁가운데서도 찬란하게 피어난 예술의 자취 때문인 듯 합니다. 로시니의 희극 ‘세비야의 이발사’와 비제의 ‘카르멘’,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의 무대이지요. 시간과 빛을 그려낸 벨라스케스, 감미로운 종교화의 무릴료, 17세기 후반 바로크 시대의 대가 바르데스 레알 등 회화의 3대 거장을 낳은 곳이기도 합니다.
K형, 도시구경을 나서기 전에 흥미로운 세비야의 역사를 되짚어봅니다. 과달키비르 강 유역, 교통의 요지에 BC 1200년경, 지중해를 장악한 고대 페니키아 인들이 세운 식민도시입니다. 그 후, 3차에 걸친 카르타고와의 전쟁에 이긴 로마인들이 500년간 통치했다지요. 로마가 망하고 7-8 세기경, 거대한 사라센 제국을 세운 이슬람 족들이 800년 간 지배합니다.
그러나 11세기부터 기독교인들의 레콩키스타(국토 재회복운동)가 시작됩니다. 톨레도 탈환, 엘시드 장군의 발렌시아 탈환, 13세기 코르도바 회복이 계속되지요. 결국 1492년,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 의해 마지막 이슬람 제국인 나자리 왕국이 멸망합니다. 회교도들은 북아프리카로 쫓겨가지요. 허나 이 기간 동안, 수학과 천문학 등이 발전하고, 이슬람의 건축술과 장식이 극치를 이룹니다. 내일 코르도바의 메스키타(회교도 사원)와 그라나다로 가서 꿈에도 못 잊을 알함브라 궁전을 볼 생각에 가슴이 설렙니다.
K형, 회교 풍 ‘술탄의 집’이란 식당에서 점심을 든 후, 과달키비르 강변에 섰습니다. 지금은 평화롭게 흐르는 강물이지만 참혹했던 전쟁의 역사가 설핏 스칩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킬 때 살육 당한 20만 명 병사들의 피가 강을 검붉게 물들이며 출렁입니다. 이사벨 여왕의 10만 대군이 이슬람 궁성의 붉은 벽을 타고 총 공세를 펴던 밤의 충천하던 함성소리도 들립니다.
그런가하면, 이 강변에서 대양을 향해 산타마리아의 돛을 올린 콜럼버스와 세계일주를 떠난 마젤란을 향해 열광하는 시민들의 환호성도 드높습니다. 그해 1492년은 신대륙발견과 함께 레콩키스타의 대업을 이룬 해였지요. 이사벨 여왕 이후, 카를로스 5세, 펠리페 2세에 이르는 1세기 동안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는 대 제국을 이룹니다. 식민지의 부가 모인 세비야는 황금의 도시라 불렸지요.
K형, 높이가 93m나 되는 세비야성당의 히랄다 종탑은 시내 어디서나 보였습니다. 12세기 회교도들이 말을 타고 올라가도록 계단 없이 만든 탑인데 15세기 기독교인들이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는 고딕식 지붕을 얹었습니다. 우리는 탑 꼭대기까지 한발자국씩 올라가며, 오늘날도 서로 우위에 서려고 살육하는 이슬람과 기독교인들 간의 갈등이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인간들의 바벨탑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비야 성당은 로마의 베드로, 런던의 바울 성당과 함께 세계 3대성당으로 꼽힌다고 하지요. 예수의 일생을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한 ‘황금의 방’은 눈부셨습니다. 성당 한 곁에는 콜럼버스의 시신을 모신 석관을 스페인의 네 왕들이 어깨에 메고 서 있습니다. 벗이여, 고백컨데 신대륙에서 아즈텍과 마야 문명을 말살시킨 그 정복의 역사를 스페인의 영광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무력으로 정복함은 무저항으로 자기를 희생한 하나님의 참 영광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세비야 성당의 종탑 위로 흰 비둘기 떼가 날아갑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