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일년에 한번 시에서 묵은 쓰레기를 무한정 걷어가 주는 날과 내 생일이 겹쳐 버렸다. 이 날 새벽같이 쓰레기를 내놓으려면 전날부터 부지런히 정리 정돈을 해야만 한다.
그나마 일년에 한번 오는 기회를 놓쳐 버리면 그 애물단지는 차고를 차지하기 때문에 생일이고 뭐고 감상에 빠질 틈이 없었다. 약속한 날이 되면 평소에 못 내놓던 덩치 큰 것들도 군소리 없이 받아준다. 이번에는 얻어 쓰다가 수명을 다한 책상이나 고장난 자전거 그리고 활자 크기가 적어서 도저히 읽을 자신이 없는 “오래된 새 책들”까지 산더미같이 내놓았다. 그동안 어디 있었나 싶은 물건들도 있고 엄연히 있는데 또 사다들인 것들도 상당했다.
손에 물을 안 묻히고 싶은 생일날 먼지를 헤집으며 집안 정리를 하다 보니 내가 참 많은 물건들을 끼고 살았음을 알게 되었다. 삶이 예측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마치 평생 한 집에서 살 것인양 이 많은 것들을 머리에 이고, 혹은 한 구석에 재어놓고 살아왔던 것이다. 바로 이렇게 받들고 사는 물질때문에 삶의 무게가 그간 한층 더 무겁지는 않았을까.
그 물건이 빠지고 난 자리에는 아이들이 떨어뜨린 몽당 연필이나 책들이 집의 수명과 맞먹는 먼지옷을 입고 앉아 있다. 때로 잊어버렸던 것들을 반갑게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역시 없어도 되는 물건들이 쓰레기가 되어 뒹굴고 있는 모양이다. 그걸 쓸어내다 보면 마치 마음 한구석을 닦아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건을 치우고 나면 드러나는 본래의 하얀 벽과 공간도 마음에 시원하게 다가온다. 마치 마음의 때가 한꺼풀 벗어진 기분이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가면서도 보이는 것, 사람의 소리에 줄곧 흔들리는 내 모습을 내가 부여 잡고 있었던 물질들에서 본다. 책장을 두 겹으로 채우고 있었던 책들을 비워내면서 나의 지식욕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을 허비했나를 생각한다. 묵은 삶의 군더더기를 처분하는 연례 행사가 마침 생일날에 닥친 것이 어쩌면 내 삶의 먼지를 털라는 의미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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