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처음 왔을 때 누군가 내게 가장 인상깊은게 뭐냐고 묻기만 하면, 언제나 주저 없이 끝도 없이 뻗어 있는 잘 닦인 도로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어디를 가던 반듯하게 닦아놓은 도로에 놀라고,
그 도로들을 빠짐없이 그려넣은 지도에 놀라고, 그 지도를 보고 정확히 찾아 가는 남편에게도 늘 놀랬으니까요. 깊은 계곡, 심지어 산꼭대기까지 뻗어 있는 무진장한 길들을 보면서 아직까지도 저는 경이감에 가까울 정도로 놀라고 있습니다.
오래 전 유럽 몇 개국을 배낭여행하면서 아예 도시 전체가 통채로 유적지인 그들의 문화유산에 다분히 주눅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집에선 명절이 되야 겨우 먹을 수 있는 진귀한 음식들이 어느 집에 가보니 평상시 군것질감으로 널려 있는 것 마냥 부러웠고, 그토록 부러워하는 제게 동행했던 친구가 물었습니다.
부럽지? 여기서 살고 싶지 않니 넌?… 헤벌렸던 자존심을 얼른 추스린 제가 또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난 적어도 무임승차따윈 하고 싶지 않아!
무임승차를 않겠다던 제가 지금 버젓이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의 조상이 닦지 않은 길, 세우지 않은 건물들을 사용하면서 말입니다.
사람은 그래서 함부로 나는 이래!하며 힘주어 말해선 안되나 봅니다. 어쨋거나 이곳 미국의 크나 큰 땅덩어리와, 길고 반듯한 도로들을 보면서 유럽여행 때와는 또다른 주눅감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고, 그 주눅을 떨쳐 버리고자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며 길고 넓음에 익숙해지려 부단히 애(?)를 쓴 결과, 지금은 그랜드캐년이 눈앞에 펼쳐져도 그저 그런가보다 하긴 합니다.
예전엔 다닥다닥 붙어 살던 골목길을 벗어나 516광장이라도 한번 나갈라치면 가슴이 벌렁거리곤 했었는데 말입니다. 사람 눈과 마음은 이렇게 간사합니다. 충만한 감격이 새들새들 시큰둥으로 변하기는 시간문제니까요.
성탄절입니다. 매년 감격이라곤 없이 그저 그런 명절처럼 지나치다가 올핸 뜬금없이 바로 그 무임승차가 생각났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피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영원한 천국행 열차에 저를 거저 태워주신 대박 무임승차의 처음 감격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저 식상하고 시큰둥했던겁니다. 오 주여, 저의 뻔뻔함을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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