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섣달 그믐날 메밀국수를 먹는 풍속이 있다. 메밀은 가늘고 길어서 ‘장수’를 기원하며, 또한 쉽게 잘리는데서 ‘일년 간 힘들었던 것을 잘라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를 넘길 때면, 이러한 메밀국수에 얽힌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쿠리 료헤이(栗 良平)의「한 그릇의 메밀국수(一杯のかけそば)」라는 단편이다. 이는 섣달 그믐날에 북해정(北海亭)이라는 국수집에 찾아온 가난한 세 모자의 이야기를 따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섣달 그믐날, 문을 닫으려는 북해정에 허름한 옷차림의 한 여자와 두 아이가 와서 따끈한 메밀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주인은 몰래 한 웅큼의 국수를 더 넣어 대접했고, 셋은 맛있게 먹은 후 150엔을 지불했다. 문을 나서는 세 모자에게 주인 내외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힘차게 인사했다.
그 다음해 12월 31일, 가게를 닫으려는데 세 모자가 또 찾아와 국수 1인분을 주문했다. 주인은 이전처럼 국수의 양을 더 넣었다. 그 다음해 섣달 그믐날이 되자 주인 내외는 ‘예약석’이란 팻말을 테이블에 놓고 세 모자를 기다렸다. 200엔으로 오른 가격표도 슬그머니 150엔으로 바꾸어 놓았다. 손님이 끊어지고 난 후, 세 모자가 찾아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을,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던 헐렁한 잠바를 입고 있었다. 국수를 먹으며 대화하는 세 모자의 목소리가 주방 너머로 들려왔다. 아버지를 잃고 많은 빚으로 고생했으며, 작은 아들이 북해정에서 먹은 국수 한 그릇과 주인 내외의 감사함을 작문으로 써서 북해도 대표로 뽑힌 이야기를 듣게 된 주인 내외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다음해, 그 다음 다음해에도 오래도록 세 모자는 오지 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 잘되어 내부수리를 하였는 데도 세 모자가 앉던 테이블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세 모자가 다시 찾아왔다. 14년 전 북해정에서 받은 친절과 희망찬 인사 덕분에 용기를 얻어 열심히 살 수 있었다고 전한다. 큰 아들은 의사가 되었고, 작은 아들은 은행가가 되었으며, 오늘 인생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일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3인분의 국수를 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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