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그 해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더욱 우리를 춥게 하였던 것은 그 겨울에 또다시 길고 긴 피란의 행렬이 이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어느 날, 피리소리를 울리기도 하면서 인해전술로 끝도 없이 국경을 넘어 오는 중공군이 나타났는데, 쏘아도 쏘아도 계속 넘어오는 중공군으로 인하여 우리의 국군과 유엔군이 한없이 뒤로 밀리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름에 피란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번에는 이웃들 누구보다도 일찍 짐을 싸고 피란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 형제들은 젖먹이 막내로 부터 줄줄이 오남매를 거느리고 어머니와 아버니 그리고 우리와 함께 오랫동안 사시던 할머니 한 분, 이렇게 여덟명이 연건동을 떠나서 하루 종일 걸려 도착을 한 곳은 서울역이었다.
서울역에는 넓은 광장까지 가득 찬 피란민들이 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있었는데, 그렇게 있기를 사흘이 되었노라고 하였다. 기차는 언제 올지 아무도 알지를 못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밤을 새울 것이 아니라,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우리는 따뜻한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었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길을 떠나서 이번에는 예전에 과거를 보러 선비들이 넘었다는 과천을 통과해서 남쪽으로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한강을 건너는데 군인들이 젊은이들을 잡아내어 군대로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흔들거리는 부교를 건너서 한강을 넘어갔다. 과천에는 아버지가 아시는 ‘점순이네’가 있다는데, 우리가 도착을 하니 이미 피란을 가고 집은 비어있었다. 우리는 점순네가 맛있게 만들어 놓은 김장김치로 저녁밥을 먹고 쌓아놓은 장작불로 따뜻하게 하룻 밤을 보내었다. 이틑날 아버지는 ‘점순이 엄마, 맛있는 김치 잘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잘 지내고 가오. 참 고마왔소’라고 빈집에다 인사를 하고 어머니는 다음에 올 피란민들을 위해서 설거지와 방청소를 말끔하게 해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다른 것은 잊었으나, 부곡에 와서는 피란민들이 더욱 많아져서 방에도 부엌에도 가득한 사람들이 눕지도 못하고 모두들 앉아서 밤을 새웠다. 아침에 주인집에서 해주는 깔끔하지 못한 아침밥을 겨우 먹고 우리는 또다시 길을 떠났다.
가다가 검문소에 도달하였는데, 당장 군인에 입대를 하여야 한다면서 아버지는 보내줄 수가 없다는 군인들을 만났다. 그 때에 어머니는 책임자인 듯한 군인에게 말하였다. ‘이 어린 아이들 다섯을 이곳에 두고 떠난 남자가 어찌 싸움인들 제대로 하겠으며, 우리는 가는 길을 모르니 가족을 그 곳에 데려다 준 다음에 입대하면 않되겠느냐’ 사정하고 또 사정을 하였었다. 적군이 그렇게 애절하게 사정을 하였더라도 들어주었을 것 같은 마음씨 좋은 군인 아저씨는 ‘아주머니, 여기를 통과해도 가는 곳 마다 검문소인데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글쎄 봐드려도 소용이 없다니까요’ ‘어쨋든 이번 만 그렇게 해주셔요.’ ‘다행히 당신들 가족외에는 아무도 여기에 없으니, 가보시구려. 그러나 절대로 이곳을 통과했다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마시오. 수원에 가면 기차가 있으리이다. 그러나 기차위에서도 잡아가니 나는 이제 몰라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무수히 고맙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수원역에 도착을 하였다.
마침내 기차가 와서 사람으로 가득찼고, 우리도 기차 지붕위의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과연 군인들이 올라와서 젊은이들을 수색하였다. 아버니는 모자를 깊이 쓰고 동생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에야 나는 아버지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었다. 천안에 도착을 하자 우리는 기차에서 내렸다. 모두들 추위에 떨리는 온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역에는 사람들의 오물로 발을 딛을 수도 없을지경이었다. 그 날은 7일 동안의 여정이 끝나는 날이기도 하였으며, 10년 동안 천안에서 있을 나의 소녀시절이 열리는 첫 날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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