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큰 아이가 사춘기입니다. 아니, 사춘기는 진작에 왔지요. 언젠가부터 말수가 적어지면서 무게를 잡기 시작하더니만 점점 엄마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하더군요. 가슴 한 귀퉁이가 휑한 것이 당최 적응이 되지 않는거예요. 예전에는 쉬지않고 엄마 옆에서 지저귀던 녀석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런 녀석이 영 낯설어질 때면 녀석 어릴적 앨범을 꺼내 하염없이 들여다보곤 합니다.
사진 속 녀석의 배꼽이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탱자만한 그것은 금새라도 터질듯 부풀어올라 올올히 실핏줄이 다 내비치고 있군요. 육아에 관한한 초보 엄마였던 제가 그놈의 탯줄의 잔재때문에 노심초사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탯줄의 끄트머리를 잘라 거즈로 눌러 논 자리가 유난히 불룩하더니, 그것이 떨어지고 난 자리에 배꼽이라고 생겨 먹은 것이 꼭 탱자를 하나 얹어 놓은 형상이더군요. 게다가 아이가 울어 재끼기라도 하면 금새 그 탱자배꼽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그걸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애타 하면서 속으로 굼시렁거렸던 말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도대체 하등 씨잘데 없는 배꼽이란게 왜 있어서 이 고생을 시키냐고....’
그 후 어찌어찌하여 잘 아물어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하게 자리 잡은 큰 아이의 배꼽을 보면서, 그것의 모체였던 탯줄을 생각합니다. 무한한 에너지를 실어 나르던 유일한 젖줄이자 생명줄이던 탯줄. 이젠 과거에 그러했음을 전설로 남긴 채 우묵히 자리잡고 있네요. 마치 폐허로 조용히 남아 있는 성지처럼 말입니다.
배꼽 성지 순례(?)를 하면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또 한번의 탯줄을 끊어야 할 준비를 해야함을 느낍니다. 이번엔 보이지 않는 탯줄, 마음의 탯줄입니다. 품 안에 있던 자식이 어느덧 장성해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언젠가 에미 품을 떠날테지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지지만, 그래도 이 에미, 산뜻하게 그 일을 치러내리라 다짐까지 해봅니다.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아닌 에미인 제 스스로 녀석과 연결된 탯줄을 제때, 제대로, 산뜻하게 끊으리라고 말입니다. 자꾸 그 일에 자신이 없어질 때마다 주변에서 겪는 비극들을 참고하기도 합니다. 미련버리지 못한 에미쪽에서 죽자꾸나 붙들고 있는 징헌 탯줄을 어느날 느닷없이 자식쪽에서 일방적으로 끊고 나갈 때, 그 텐션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나가자빠지는 비극을 주변에서 솔챦게 보아왔기에 하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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