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글을 좋아했다. 소녀시절에도 처녀시절에도 그랬다. 신혼때도 그랬고 쉰 몇 중년이 된 지금도 그렇다. 문학류, 특히 시를 그는 좋아했다. 그러는 사이에 글쓰기 갈증이 생겼다. 십수년 내지 수십년 목마름이다.
미국살이 31년차 이선자씨(사진)가 2005년 가입한 샌프란시스코한국문학인협회의 크고작은 모임을 거의 거르지 않은 것도, 어렵사리 짬을 내 독서모임에 나가는 것도, 글읽기의 감칠맛과 글쓰기의 목마름에 이끌린 때문이다.
글쓰기는 여전히 숙제다. “글다운 글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좋은 글을 써보고 싶어요. 항상 써보고 싶고, 써야지 써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는데…”
글에 대한 겸양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 너머 일, 버거운 미국살이는 글쓰기를 위한 안식을 번번이 앗아갔다. 1979년 여름 이민을 온 그는 1982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식당카페를 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껏 그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버클리로, 오리건주 유진으로, 오클랜드로 이사할 때도 식당카페는 이삿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는 산라몬의 리거시 파트너스 빌딩에서 캑터스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씨가 못다한 글쓰기 대신 소리없는 선행을 거듭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오클랜드선교회(대표 김종인 오이코스대 총장) 회원인 그는 지난해 11월 이 선교회가 주관한 히스패닉을 위한 추수감사절 파티에 샌드위치 등 식사 100분을 희사했다. 공원파티장에 가 음식서빙을 직접 거들기도 했다. 축구인 남편(이형수) 덕분에, 지난 연말에는 일요일 저녁에 카페를 열어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의 먹성좋은 축구인 약 50명에 식사를 대접했다.
글쓰기 이외에 이씨의 소망목록이 몇줄 더 늘었다. “둘째(딸 유진)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으면 좋겠고, 빨리 경기가 회복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생겼으면 더 좋겠어요.”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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