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계의 가장 지적인 감독 중 하나로 비평가요 1950년대 후반 장-뤽 고다르와 프랑솨 트뤼포 및 클로드 샤브롤 등과 함께 뉴 웨이브를 형성한 에릭 로머가 지난 11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향년 89세.
로머 하면 대뜸 생각나는 것이 극중 인물들 간의 장시간의 대화다. 그의 대화는 사랑과 인간 관계와 편견과 위선 등 우리 모두가 겪고 또 갖고 있는 것에 관한 것으로 중류층의 도덕적 딜레마를 잘 다루고 있다.
이런 말이 많은 영화들의 시리즈 중 첫 번째가 그의 첫 국제적 성공작으로 나이 50이 다 돼 만든 ‘모드의 집에서의 나의 밤’(1969)과 그의 첫 컬러영화인 ‘클레어의 무릎’ 및 ‘오후의 클로에’등이 포함된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다. 이 시리즈는 주로 남자들의 내적 갈등 특히 그들의 여자와의 관계에 관한 얘기로 대사가 신랄하면서도 위트가 있다.
지적인 감독·비평가로
1950년대 ‘뉴웨이브’ 형성
극중 인물간의 대화 통해
삶의 도덕적 딜레마 잘 다뤄
로머는 남자들의 여자에 대한 우월감과 편견과 위선을 따끔하게 꼬집어 비트는데 그의 영화 속의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들보다 한 수 아래다. 그리고 그는 여자보다 여자의 속내를 더 잘 안다. 한국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로머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로머의 말은 결코 지루하거나 설교조가 아니다. 대사들이 위트와 유머가 있고 로맨틱하며 우습고 재미있고 또 즐겁고 때론 현학적인데 그의 말들을 들으면 신선한 바람을 쐬는 기분이다.
로머의 25편 정도에 이르는 영화들 중 상당부분이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와 함께 그가 1980년대에 시작한 ‘코미디와 격언’ 그리고 그가 70대가 돼 만든 ‘사계절의 이야기’ 등 세 개의 시리즈 안에 포함된다.
‘코미디와 격언’ 시리즈 안에는 ‘비행사의 아내’와 ‘완벽한 결혼’ 그리고 베를린 영화제 수상작인 ‘해변의 폴린’ 등이 들어 있고 ‘사계절의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의 얘기로 나뉘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을과 여름 이야기가 아주 맵시 있고 재미있는데 대사가 고상하고 세련되고 꾸밈이 없어 말에 취하게 된다.
로머는 1920년 4월4일 장-마리 모리스 셰레르라는 이름으로 낭시에서 태어났다.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프리랜서 기자 노릇을 하고 또 소설을 쓰다가 영화 비평가가 됐다. 그는 1950년부터 1963년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전문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담당 부장을 지냈는데 고다르와 샤브롤과 트뤼포 등도 다 이 잡지 출신이다.
이들이 만든 언어로 각본 집필과 연출을 동시에 하면서 자기 소신에 따라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일컫는 오퇴르의 명실상부 한 대표자인 로머의 스타일은 윤기가 흐르고 세련됐다. 내용은 지적이요 사색적이며 교양이 있는데 그의 인물들은 대사를 통해 성격과 사람 됨됨이가 드러난다.
그의 카메라는 동작을 자제하면서 찍을 것만 찍어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또 로머는 조명을 가급적 덜 쓰고 제작진도 최소한의 사람들만 쓴다. 그는 영화를 아주 저렴하고 또 빠르게 만든다. 이런 뚜렷한 작품 특성 때문에 로머의 영화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를 금방 알아볼 수가 있다. 로머 스타일은 매력적이다.
로머의 영화들 중 가장 대중적이요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것들은 1980~ 1990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도덕 시리즈’ 외에 ‘파리의 만월’ ‘녹색 광선’ ‘레넷과 미라벨의 네 번의 모험’ 및 ‘내 애인의 애인’ 등이 이때 만들어졌다.
로머는 몇 편의 시대극도 만들었다. 연극 같은 ‘숙녀와 공작’ ‘O의 후작부인’ 및 ‘퍼시발’ 등이 그런 것들. 로머는 200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생애업적상(사진)을 받았고 그의 마지막 영화는 2007년에 나온 신비한 분위기가 가득한 동화 같은 ‘아스트레아와 셀라동의 로맨스’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DVD로 나왔다. 로머는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의 하나다.
박흥진 / 편집위원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 중 한 편인 ‘클레어의 무릎’은 남자의 여자에 대한 우월감과 편견을 가볍게 조소하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