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으로 기억된다. 고려대장경 전산화가 진행되었다. 당시 나는 불교방송 PD였다. 쌍용의 지원을 받아 전산화를 돕는 캠페인을 만들었다. 육성을 내보내는 라디오 1분 캠페인이다. 음악, 협찬사 소개하면 메시지시간은 48초였다. 빠르게 말해야 했기에 점잖으신 조순 서울시장은 고역을 치르셨다. 대선 후보도 했던 그 분께 누구도 NG를 걸지 않았다 했다. 하지만 막내 딸 뻘도 안 되는 신참 피디의 안달에 흔쾌히 반복해 주셨다. 정치, 행정, 종교 문화계의 어른을 두루 만났다. 이어령 선생님은 꽉 찬 일정에서 어렵게 빼주셨는데 그만 배터리를 안 가져 갔고, 그날따라 정전이었다. 나 보다 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셨다. 그런 내가 김수환 추기경님을 뵈었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 분이다.
그 때는 ‘디지털digital’하면 “뭐? 돼지 털?” 하던 때다. 일흔이 넘으신 어른이 디지털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할지 의문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30분, 먼저 준비된 원고를 낭독해 주셨다. 몇 번 반복해서 녹음을 마치고는, 예정에 없던 인터뷰를 시작했다. 자연스런 대화를 편집하면 더 드라마틱할 거라는 욕심에 질문을 쏟았다. 감탄사, 순간의 포즈가 그 어떤 단어 보다 호소력 있다고 믿었다.
추기경님은 불교문화에 해박하셨고,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극하게 존중하셨다. 그 분의 언어에서는 오랜 시간 정련해온 더 깊어질 수 없는 사유가 깃들어 있었다. 말씀이 곧 글이었고, 누구나 참여토록 변화의 시작을 이끌었다. 더불어 전산화라는 새 화두에 대해서도 막힘이 없으셨다. 그 어떤 신과학 개념을 꺼낸다 한들, 꿰뚫으실 거라는 믿음을 주셨다. 한 곳에 도를 이룬 분은 원리를 통달하셨기에 두루 통한다는 증거를 보았다.
어른은 문 밖까지 배웅해주셨고, 맞잡아주신 손의 온기는 아직도 되 살아난다. 그 후 먼 발치서 한 번 더 뵈었다. 법정 스님 초청으로 길상사 개원 법회에 오셨었다.
이듬 해, 이해인 수녀를 모시고 클래식음악 크리스마스 특집을 했다. 수녀님은 추기경님이 이끄는 화합에 동참하고자 섭외에 응하셨다고 했다.
큰 어른이 가신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 분의 큰 걸음을 쫓으려면 우리 작은 사람들은 여러 번 잰 걸음을 쳐야 한다. 서로의 종교를 받들어 주는, 나와 다른 이를 섬기는 부지런을 차려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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