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와 기독교 단체, 불교계 등에서 보내오는 주보, 뉴스레터, 신간도서 등을 날마다 우편으로 받는다.
비가 많이 내리던 지난 2월 어느 날. 여러 갈래로 찢긴 종이를 담은 비닐봉지 하나가 배달됐다.
우편물을 언뜻 본 순간 ‘혹시 내가 쓴 기사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신문을 찢어 보냈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수신인 난에 기자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편지였다. 봉투의 찢어진 틈새로 내용물이 교회 주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닐봉지는 연방 우정국(USPS)이 그 편지를 다시 포장해 보낸 것으로, 겉면에 인쇄된, ‘친애하는 우정국 고객님께’로 시작되는 메시지가 눈길을 끈다.
“우리가 당신의 우편물을 취급하는 동안 발생한 훼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 일 때문에 불편을 겪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편물이 당신에게 소중하며, 그것이 양호한 상태로 배달되기를 바랄 충분한 권리가 당신에게 있음을 압니다. (중략) 우편물이 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많은 양을 신속히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생기곤 합니다. (중략) 당신의 양해를 구합니다. 이런 드문 사고도 없앨 수 있도록 우편물 처리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각고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과를 받아주십시오.”
편지 하나를 잘 건사하려는 우정국의 고객감동 서비스는 몇 년 전 법원에서 ‘원고’(plaintiff), ‘피고’(defendant)라는 용어 뒤에 ‘소송을 먼저 제기한 사람’ ‘소송을 당한 사람’이라는 설명을 친절하게 적어 놓은 서류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따스한 감동을 기억나게 했다. 아울러 교회의 막중한 책임을 돌아보게 했다.
예배를 제외한다면, 이민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무래도 ‘사랑의 복음’으로 신자들과 믿지 않는 이들의 갈가리 찢긴 마음을 싸매어 주고 아픔을 덜어주는 일일 것 같다. ‘상한 감정의 치유’에만 매달리며 현재의 곤경에 대한 책임을 외부로만 돌리는 유약한 교인들을 만들라는 말이 아니다. ‘베이비시팅 목회’를 장려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풍파 많은 한 세상 살아가다가 깨진 꿈, 상한 맘, 지친 몸밖에 남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교회를 찾는다. 기댈 언덕을 찾아 막막한 심정으로. 궁극적인 평안과 위로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 터이지만, 징검다리 역할은 하는 것은 사람이고 교회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 여럿을 전화와 이메일 상담으로 살린 목사를 알고 있다.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그는 인생의 막장에 내몰린 한 영혼의 아픔에 귀 기울이기 위해 타주까지 먼먼 길을 운전해 가고, 생계가 막막하다며 찾아온 이를 마켓으로 데려가 장을 봐 주기도 했다. 목사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뒤 가난과 고독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한국의 홀사모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지극 정성으로 섬긴 사모도 있다. 헌금 감소를 겪으면서도 어려운 교인들을 작게나마 구제하는 사역에 적극적으로 나선 교회도 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술이 몇 순배 돌면 알콜의 힘을 빌어 속을 털어 놓으며 시작한 신세타령이 끝내 울음으로 변하는 사람이 요즘 하나 둘이 아니라고 한다. 이토록 갑갑한 시대, 행함 없는 ‘쭉정이 믿음’을 버리고 섬김과 돌봄의 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스스로를 거듭거듭 개혁시켜 나갔으면 좋겠다. 상처받은 이들의 깨진 꿈을 새로운 차원에서 수선해 주면 좋겠다.
그리하여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는 복을 받기를 바란다.
진정 교회가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라면, 정말 교회가 예수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푸는 자’라고 믿는다면 말이다.
김장섭 /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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