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인생을 논하며,철학을 논하며, 진리를 논하며,알지 못한 미래에 대하여 무한한 동경심과 두려움이 있었다.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이 문구는 미래의 삶에 대하여 중압감과 불안함을 더해주었다.
많지도 않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와서 느끼는 삶은” 만만치 않다”이다.
뜻하지 않게 어려움과 괴로움은 찾아온다.가깝게는 배우자나 가족의 죽음,전혀 예기치 않았던 질병 ,경제의 불황으로 인한 실직 ,크고 작은 사업체마다 불경기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저 멀리는 아이티와 칠레의 지진등,우리의 선택과 상관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어려움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노하게 하고,슬프게 한다. 삶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삶이란 공을 벽에 던졌을 때 그대로 나에게 되돌아 오는것 같다. .
그래서 문제는 때론 나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나의 선택이 잘못되어서, 내가 부족하여, 내 삶이 어려움에 처한 경우가 많았다.그러나 나의 노력에도, 나의 진실함에도,나의 정의감에도 불구하고 삶은 나를 속이기도 하였다.그래서 인생은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또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러나 ‘산다는 것이 별건가’ 현재 주어진 내 삶에 책임을 지며, 열심히 살아가노라면 기쁨의 날도, 때론 아픔도 오는 것이 세상사가 아니겠는가!
아팠던 기억도, 지독히 쓰라렸던 괴로움도 지나고 나면 그리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우리네의 삶이다.
굳이 뒤돌아보아 원한을 품을 필요도 없고,호되게 후회할 필요도 없다. 물 흐르듯 흘려 보내노라면 어느덧 세월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대학 때 처음 느꼈던 ‘삶’ 이라는 단어는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중압감을 준다. 가슴밑으로 나를 끌어내려 꼼짝 못하게 하기도 한다.그러나 “사는게 별건가“ 툭 던져버릴 때 무게감도 현실의 괴로움도 함께 날아가버리는 것 같다.
불가항력으로 불어 닥치는 괴로움이든,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오는 어려움이든, 굳이 삶 자체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말고 가볍게 던져버리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