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문턱에 서 있다. 장미향기 가득한 계절 만큼이나 사람향기 아름답게 풍겨나는 가정의 달이다. 이 향기로운 오월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쓸쓸함이 내 한쪽 빈가슴을 메우고 있다. 아빠의 가슴에 마지막 카네이션을 달아주던 딸의 모습이 심장이 시리도록 져려오기 때문이다.
그날, 딸 소피아는 예배당문 앞에서 주일학생 몇명과 함께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Happy Mother’s Day” 하며 어른들 가슴에 정성껏 꽃을 달아주고 있었다. 예배 오르간을 준비하고있는 나에게도 다가와 꽃을 달아주며 “엄마 오늘 많이 힘들지, 해피 마더스데이!” 소피아는 꽃 한송이를 들고 예배 준비실로 들어갔다. 한참을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에 문을 열었다. 딸은 걸려있는 성직자 가운중에서 아빠가 입으시던 흰색 가운을 만지작 거리며 울고 있었다. 가운의 왼편 가슴엔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가 달려있었다. 꽃을 달아 드리면 “ 댕큐 소피아” 하던 아빠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 그리운 것이다. 두팔로 감싸며 안아주시던 아빠가 금방이라도 가운속에서 걸어 나올것 같은 것이다. 황산에 절인듯 심장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울고 있는 딸을 끌어 안았다. “소피아! 잘했다. 아빠가 천국에서 카네이션 달고 기뻐하시겠네”
아빠가 우리곁을 떠난지 두달 남짖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그냥 슬픔 속에다 방치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빠대신 신앙의 중심은 잡고 있어야 했기에 그날도 어버이주일 가정예배를 드렸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있고, 한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한간의 천국이라.”
서로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눈물을 삼키고 찬송을 부르다가 어느순간 우리 네 명은 부등켜안고 엉엉 소리내어 울어버렸다. 그날 이후, 꽃 한송이 비문에 얹어놓는 어린 자식들의 마음을 누가알랴!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 드릴수 있는 부모가 계심에 감사하자. 나란히 손잡고 사랑을 얘기하며 거닐수 있는 배우자가 있음이 행복해 하자. 내 가슴에 꽃 한송이 달아주는 자식이 있음에 고마와 하자. 가정의 달을 바라보며 섬길수 있는 가족이 존재하는것 만으로 진실로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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