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동·서양 대륙이 마주치며 종교와 문화가 충돌하는 터키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고대의 히타이트 제국 후에 그리스, 로마, 오스만 터키로 이어지는 강력한 제국의 통치를 받았던 민족의 후손들은 6.25동란 때 한국을 도와 준 사람들이라 더욱 마음이 끌렸다.
터키는 고대문명 발상의 젖줄이었던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곳에는 각종 문화와 다른 건축양식이 어우러져 고대와 현대의 역사가 같이 숨 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은 보스포러스 해협. 이 해협은 수천년 간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동·서양의 대륙을 갈라놓으며 흑해와 마르마라 해를 연결하고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길이가 약 31.7km이고 폭은 700m에서 3,400m까지 된다. 고대·중세에 상거래의 중심이었던 이곳을 오늘날에도 매년 4만여척의 배들이 통과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많았던 시대에 천혜의 요새였던 이 해협을 끼고 로마 황제는 기원 후 330년에 당시 최대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했었다.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 해협의 물 흐름은 시간당 3~4km의 속도로 여기저기에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물 흐름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아보니 흑해와 마르마라해의 염도가 달라 두 바다의 물이 표면과 속에서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흐르는 물은 싱싱한 물고기들의 어장이 되어주고 있었다. 나는 지중해성 기후의 따스한 태양을 즐기며 해협을 따라 지어진 옛날의 궁전과 별장들, 찻집과 숲들을 바라보았다. 그 뒤편으로는 새로운 건물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어디선가 고등어 케밥 굽는 고소한 냄새가 고향의 냄새를 떠올리게 했다. 그 곳의 특산물이라는 말리지 않고 배를 갈라 튀긴 멸치와 민어구이는 별미였다. 터키인들의 인심과 정은 한국 사람들만큼이나 풍성했다. 세차게 흐르는 검푸른 바닷물이 생물과 사람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줌을 알았다.
보스포러스를 아쉬움으로 띄워 보내고 남서쪽으로 향하니 에베소가 나온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에베소는 기원 전 3세기에서 기원 후 6세기께 세워진 것으로 소아시아의 수도였을 뿐 아니라,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제국의 4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도시였다. 도시는 비옥한 토지와 활발한 교역을 통해 발전을 거듭하였다. 수로가 중요했던 당시에 무역 항구이자 동서양을 연결시키는 교통의 요충이었던 에베소는 도시인구가 한때 30만명에 육박했었다고 한다. 초대 기독교인들에게도 에베소는 중요한 중심지였다.
이렇게 번창했던 도시가 멸망한 이유는 지진도 있었지만 항구를 형성하던 바닷물의 수면이 차차 낮아지면서 항구가 멀어지고 항구지역이 늪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늪이 되자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그로 인해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주민들은 그곳에서 살 수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흐르는 동안 사람들에게 생명과 시원함을 공급해 준다. 정지한 물은 생명을 잃고 사람들을 밀어낸다. 주민들이 떠난 에베소는 흙에 묻혀 폐허가 되고 말았다. 현재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에베소는 전체의 20% 미만에 불과하고 하니 아직도 묻혀 있는 옛 영광은 얼마나 화려했을까 짐작이 간다.
아직도 번창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주위와 대조적으로 폐허가 된 에베소를 보며 다른 운명을 걷게 된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한곳은 물이 흘러 생명의 젖줄이 되어 주었고 다른 곳에서는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몰락의 근원이 되었다.
자신의 것을 흘려 이웃에게 나눠주는 곳에는 생명이 있고 움켜쥐고 자신만을 위해 누릴 때는 문제가 생긴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곰곰이 되새기며 돌아왔다.
김홍식 /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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