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상황에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표현을 잘 하는데, ‘디드로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이 용어는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철학자 드니 디드로의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살림이 넉넉지 않았던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딸의 결혼 비용 마련을 위해 자신이 소장한 책들을 러시아의 황제 예카트리나 2세에게 팔아야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의 책을 사들인 황제가 파리에 책들을 그냥 두고 디드로에게 관리를 맡겼고, 더 나아가서 디드로를 사서로 고용해 매년 꼬박꼬박 월급도 주었다고 한다.
수많은 작품을 남긴 디드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볼테르와 루소와도 각별한 사이여서 그 친구들로부터도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디드로가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멋진 침실 가운을 선물 받았다. 선물로 받은 그 가운을 입고 서재에 앉으니 책상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책상을 바꾸었더니 이번엔 책꽂이가 눈에 거슬리더라는 것이다.
책꽂이를 바꾸니 다음에는 의자가 거슬리고... 결국 서재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다 구색을 맞추어 바꾸고 났는데도 전혀 기쁘지가 않더라고 했다.
이 일화에서 디드로 딜레마라는 용어가 나온 것인데, 소비가 또 다른 소비를 부르고, 욕망의 추구가 만족 대신 또 다른 욕망을 낳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소비가 다른 소비로 이어지도록 하는 파급효과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용어를 제목으로 하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우리말 번역서는 ‘디드로 딜레마’라는 책인데, 원서의 제목은 ‘Time Money Happiness’이다. 이 책의 저자 알리슨 헤이스 씨는 인생의 결정적 요소인 시간, 돈, 행복을 놓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딜레마에 빠진 현대인의 실존과 불만족을 이야기해준다.
우리는 왜 늘 허덕이는지, 시간, 돈, 행복의 본질이 무엇이기에 그러한지, 그리고 시간, 돈, 행복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더불어 최고의 삶을 만드는 시간, 돈, 행복의 황금분할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고대 철학자부터 사상가, 심리학자 뿐 만아니라 거리의 십대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관점과 지식 체계를 넘나들며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일정한 제약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는데 시간은 삶을 구성하고 돈은 삶의 수단이 되어준다. 돈이 우리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면 시간은 우리의 정신적 욕구를 해결해준다고 할 수 있는데,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우리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돈과 행복 사이에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목이 탈 때는 물 한잔이 너무 달지만, 두 잔 세 잔 마시면 만족감이 점점 줄어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행복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행과 절망에 빠지기 쉽다고 하면서 저자는 행복을 위한 기본행동들을 제시하면서 걱정하는 시간을 줄이면 행복해지는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의 걱정거리를 매일 적어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하면 아마 근심 대다수가 결국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며, 걱정한다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계획과 걱정은 구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걱정은 불안을 야기하지만, 계획은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정리해주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선물하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쪼록 그들이 디드로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영옥 / 수필가·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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