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요즘 TV를 틀면 여기저기서 한국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한 드라마의 재미에 꽂히다보면 계속 보게 된다. 약속이 있는 날은 방영날짜를 놓치기도 하고 늦은 전개가 답답하여 비디오 가게로 뛰어가서 CD를 빌려와서는 밤늦도록 그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다음날은 허둥지둥 출근 준비를 하게 되고 ‘평일은 안돼, 주말에 맘 놓고 보자’ 하여 토요일 저녁부터 드라마를 보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되고 다음날 교회 가서 꾸벅꾸벅 졸게도 된다.
미주 한인들은 왜 이렇게 한국 TV 드라마를 좋아할까? 한국에 있을 때는 갈 곳이 많고 만날 사람도 많아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이뤄나가느라 바빠서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도 미국에 살면서부터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
부부가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일하는 미국생활이 더욱 바쁘고 정신이 없을 텐데도 한국 드라마 볼 시간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생활반경이 너무나 좁기 때문이다. 직장과 일터 혹은 교회나 친지, 친구 모임에 불과한 작은 한국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야외 나들이를 가기에는 시간과 돈이 들고 몸까지 피곤해지니 그저 주말이면 집에서 푹 쉬며 TV앞에서 자다 깨다 하고 싶은 것이다. 오랜만에 친지나 친구가 모여도 비슷비슷한 이민 생활 속에 별다른 공통대화가 없다. 다른 사람 흉이나 남을 헐뜯는 것보다는 그저 가볍게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수다꺼리로 한국 드라마 얘기는 그만이지 않은가.그래서 한인들은 미국에 살면서 생기는 언어와 인종, 사업상 스트레스, 발등 위에 떨어진 불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서 다들 드라마 세계로 빠지는 것일 것이다.
나 역시 화제가 되는 드라마의 내용은 대충 안다. 한동안 드라마를 끊자싶어 안보기로 했는데 지난 주말 다시 시작하고 만 것은 사극 ‘동이’이다. 골치 아픈 일을 잊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 싶자 갑자기 그 드라마가 궁금했다.
대학생인 작은 아이가 인터넷으로 들어간 드라마는 상당히 극이 진행되어있었다. 한 스토리마다 일일이 찾아야 하고 자주 접속이 불량하다보니 아예 옆에 아이가 붙어 앉아서 밤새도록 ‘동이’를 보았다. 작은 화면과 불편한 관람 자세에도 불구, 의외의 재미 때문에 다음날 비디오 가게에서 나머지 10여편을 몽땅 빌려와 보기 시작했다.그런데 옆에서 보던 아이가 동이에 빠져버렸다. 대형TV 화면으로 같이 보자고 하니 ‘영어 자막이 안 나와 그 뜻을 잘 모른다’며 책상 위에서, 침대 위에서 심지어 노트북을 옆으로 세우고 누운 채 저녁마다 보고 있다.
“어른들이 보는 드라마인데, 네가 그걸 왜 보냐? 앞으로 점점 더 시기하고 모함하고 건전치 못한 내용이 전개될 거야.”“미국 드라마는 더 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야?”“조선 숙종시대 천민 출신이 무수리로 궁에 들어가 후궁이 되고 조선 21대 임금이 되는 영조를 낳게 되는 것만 역사적 사실이야, 나머지는 모두 허구야.”아이가 흥미 있는 부분은 검시하고 사건을 수사하는 감찰부의 일과 근엄한 왕을 망가뜨리고 웃게 만드는 동이의 밝고 긍정적인 캔디 캐릭터일 것이다. 아이는 6월에 한국에 가면 가장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보겠다고 한다. 한국 역사와 풍습, 문화에 적극 관심이 생긴 것이다. 2세가 사극을 보면서 우리 것에 대한 판타지를 갖게 되고 서울에 대한 애정이 생겨난 것을 좋다고 해야 하나? 아이는 여름방학이 끝나면 대학으로 가야하는데 기숙사에서도 동이를 볼 참이다. 앞으로 동이는 50회까지 한다는데 참으로 갈 길이 멀다.
한편으로 “동이가 하는 말은 존댓말이지? 집에서는 반말하는데 한국 가서 그 말 써도 돼?” 하는 아이, 존댓말을 한답시고 “진지 드셨어요?”하고 한국 친지들에게 말할 것을 상상하니 우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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