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이 결혼 한 것은 작년 가을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문을 열고 들어올 딸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딸의 빈자리로 인한 공허감 때문만이 아니다. 결혼 비용 전체를 딸 스스로 해결한 딸의 그 대견함에 대한 고마움도 크지만, 조금도 도움을 줄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으로 인해 딸을 아직도 마음으로부터 보내지 못하고 있나 보다. 많은 엄마들이 딸을 보내고 나면 시원섭섭하다 한다. 하지만 나에겐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응어리로 남아 지금까지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많은 엄마들이 혼사를 앞두고 입술이 부르트고 잠을 설치며 혼수 장만하느라 고생하는 것을 봤다. 오죽하면 딸 시집보내고 기둥뿌리가 휘청거린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예단과 예물 혼수 때문에 결별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 행복의 문이 물질로 얼룩진 비극이었다.
풍습이 젖어 있는 나에겐 딸의 혼사를 앞두고 고민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뉴욕에 있는 친구 딸 결혼식을 보니 피로연 한사람 비용이 이백 오십불이라 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치르는 결혼식 보다는 복잡한 것은 아니었다. 고민 고민 끝에 나는 딸에게 조용히 의논 했다. 엄마가 준비할 결혼 비용과 시집에 보낼 예단은 어찌해야 할까를….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체 돈에 신경 쓰지 말란다. 그리고 엄마가 할 것은 기도뿐이라고 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고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딸은 엄마의 형편을 너무도 헤아려 주었다. 학용품 가격 밖에 안 되는 돈 마저도 NO라고 했다. 그렇게 고민하며 걱정 해오던 딸 혼사가 무일푼으로 결정되었다. 평생 한번 치루는 결혼식에도 엄마의 형편을 헤아리는 딸이었다.
한없이 고맙고 대견하기만 했다. 반면에 미안함과 아쉬움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아마 하늘나라에서 지켜보는 아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여,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떠나보낸 딸에 대한 생각은 내 마음에서 보내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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